아자젤은 의사의 소견을 들으며 마른세수를 연거푸 반복했어. 어디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태아도 모체도 항생제에 대한 반응이 있었는데 태아에겐 그게 치명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함. 아무래도 아기 그 자신도 뮤턴트이다보니 항생제에 대한 반응이 남달랐던 거야. 일반적인 수면제 역할을 했을 거라고 해. 그게 좀 더 과해졌으면 진짜 항생제로 죽었을지도 몰랐겠지만 에릭은 그것도 모르고 움직이지도 않는 배를 보며 죽었다고만 생각했어. 실상 아기를 죽인 건 허리 총상에 의한 충격이었음. 배와 가까웠던 탓도 있고 항생제로 태아가 약해졌던 탓도 있음. 에릭은 보름간 의식이 없었어. 그 시간동안 아자젤은 이 사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조금이라도 덜 충격 받을까 고민했는데, 눈을 뜬 에릭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천천히 눈만 깜빡일 뿐이었음. 너무 울어서 온 몸의 수분이 말라버린 것처럼 영혼조차 퍼석해보였고 눈에는 물기마저 없었어. 아자젤은 그 텅 빈 눈을 보다 못해 이마를 짚으며 병실을 나옴.
그는 마지막 뒷정리를 하러 잠시 러시아에 들렀다 에릭이 머물렀던 모스크바의 집까지 가게 됨. 이미 집안은 몇 차례 뒤집힌 듯 물건들이 여기저기 깨지고 흩어져 있었어. 여기저기 군홧발이 난무했고 먼지가 자욱하게 앉아있어. 쓸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려는데 침대 가에 떨어진 작은 수첩을 하나 발견함. 수첩을 뒤져보니 에릭의 필체였고 독일어로 써있어. 아마 동네 갱들이 물건을 뒤지다가 수첩을 발견했지만 읽지 못해 버리고 간 것 같음. 먼지를 털어 코트 저 안쪽 주머니에 넣어놓고 집을 나온 후 은행으로 가 에릭의 구좌를 정지시켰어. 그날 저녁, 수소문으로 독일어를 배운 여자를 하나 잡아다 앉혀놓고 에릭의 수첩을 던져주고 해석을 시켰어. 잔뜩 떨던 여자는 더듬거리며 수첩의 글을 해석했고 다리를 꼰 채 잠잠히 듣고 있던 아자젤은 자신의 온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기 전에 여자를 쫒아냈음. 안녕 아가. 오늘은 날이 추워. 모처럼 하늘이 맑아 파파는 파란 하늘을 보며 네 파파를 생각했단다. 이런, 찰스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써 있는 내용은 대부분 비슷했음. 날씨이야기, 먹은 음식 이야기, 찰스와 아기이야기. 그중에는 아기의 이름을 지은 흔적도 있었고 보고 싶은 찰스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어. 여자의 목소리로 전해 들은 에릭의 한 달은 너무나 행복해보였어. 비록 실제로 읽는 사람은 불안에 가득 차 있었지만 들리는 어투는 매우 다정했음. 행복한 모습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수첩에 글을 적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어. 아자젤은 여태껏 자신 같은 냉혈한은 없다고 생각했음. 첫아이를 잃고 넋을 놓은 모습을 보고는 소중한 것 하나 지키지 못한 약해빠진 녀석이라고 비난했고, 눈보라 속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모습은 조금 짠하다고 생각했지만 딱 거기까지였음. 타인에게 관심 갖는 법도 몰라서 이제껏 에릭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알 생각도 없었는데, 수첩에는 에릭 렌셔라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왔던 인생 중에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너무나 절절하게 써대서, 자기가 왜 울고 있는지도 모른 채 후회했어. 왜 후회하고 또 무엇에 대해 후회하는지 모르지만 왠지 그에게 평생을 걸쳐 못할 짓을 했다는 걸 깨달았어.
에릭이 정신을 차리고 이틀이 지났을 때 쇼우가 찾아왔어. “수고했다. 역시 넌 내 최고의 말이야.” 뻣뻣해진 브루넷의 머리를 다정스런 손길로 쓰다듬었어. 옆에 서 있던 아자젤은 에릭이 언제 폭발할지 몰라 불안에 차 있었는데 의외로 얌전히 누워서 그 손길을 받고 있었어. 그냥 너무 지쳐서 이젠 화낼 의지도 없겠구나 싶었는데 병실에 있는 철제도구들이 달그락거려. 너무 분해서 미칠 것만 같아. 앞에서 재밌다는 듯 웃고 있는 저 남자를 죽이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질 않아. 머릿속이 분노로 곤죽이 되어 죽을 것 같아. 두 눈이 시뻘개졌어. 그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마치 피눈물로 보이는 것 같아. 손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어서 눈앞의 원수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도 비참해. 한참동안 쇼우를 쏘아보던 눈이 천천히 체념한 듯 감김.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후엔 기계적으로 움직였어.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가끔은 쇼우에게 안기고. 일부러 의식을 하지 않으려는 듯 배는 절대 쳐다보지 않았음. 쇼우는 기쁜 표정으로 다시 근육으로 단단해진 에릭의 아랫배를 종종 버릇처럼 쓰다듬어. 그럴 때 마다 에릭은 넘치는 살의를 참기 위해서, 주먹을 꽉 틀어쥔 채 부들부들 떨며 입술을 깨물곤 했음. 목을 매려 한 적도 있었지만 결과는 쇼우가 행하는 무자비할 정도로-실상은 평소보다 배는 달콤한 행위였지만 에릭에겐 매우-비참한 강간뿐이어서 목숨을 끊지도 못했음. 또 실패하면 다시 당할게 뻔 하니 그냥 살자 하고 체념해버렸음. 자살이 실패한 후 1년여동안 에릭은 웃음이 늘었어. 늘 안면에 미소를 띄고 있었고 실없는 농담에도 큰소리로 웃어댔어. 립타이드에게 장난을 걸고 엔젤의 치마를 보고 dead sexy하다고 칭찬도 해주며 넉살도 부렸음. 헬파이어 클럽은 그의 기괴한 행동이 괴로웠지만 참아야지 어째. 딱 보기에도 에릭은 저런 행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보였으니까.
아자젤은 창가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에릭을 보며 주머니에 있는 수첩을 만지작거렸음. 돌려주려 했지만 선뜻 줄 수가 없어서 항상 실패했지. 오늘은 전해주고 말리라 다짐을 했어. “저기.. 매그니토.” “응? 아아.” 아자젤이 뭐라 더 말을 하기도 전에 에릭이 성큼성큼 다가와서 매달렸어. 그냥 수첩을 전해주려 했던 것뿐인데 매달려서는 온몸을 부벼대는 통에 하려던 말도 못하고 입만 뻥끗거렸지. 에릭은 그가 쩔쩔매는걸 보고 실실 웃었어.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더더욱 입이 열리지가 않아 결국 그날도 수첩은 돌려주지 못했어.
그들은 에릭이 웃는걸 보고 그래도 극복할 방법을 찾았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기우였지. 발코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립타이드는 엔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들어. 엔젤은 임무를 전해주러 에릭의 방에 갔다가 바닥에 퍼져있는 피 웅덩이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 그동안도 딱히 제정신은 아닐 거라고 판단했지만 멍한 얼굴로 팔뚝에 칼날을 꽂아 넣고 있는걸 보고 있자니 이젠 진지하게 치료가 필요해 보였어. 하지만 에릭에 한해서는 쇼우의 명 없이는 병원도 갈 수가 없었지. 관통당한 팔을 흔들고 있던 에릭을 침대에 눕히고 급하게 붕대로 지혈을 했어.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라. “내가 왜 누워야 해?” 말똥말똥 쳐다보며 하는 말에 아자젤은 에릭을 그냥 기절시켰음. 그 편이 속 시원하니까. 립타이드가 놀란 엔젤을 진정시키려 데리고 나가고 뒷처리는 아자젤이 했음.(뒷처리담당일세) 어느새 잠으로 이어진 건지 새근새근 잘만 자는 얼굴을 한 대 때리고 싶은 충동도 들었어. 항상 웃고 있는 평소와는 달리 잠든 얼굴은 평온하지 못했어. 그 불쌍한 표정에 한숨을 한번 쉰 후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방 밖으로 나왔는데 조그만 사내아이가 방 문에 붙어서 안쪽을 쳐다보고 있었어. “여긴 오지 말라고 했지 않나.” 한두번 들어본 게 아닌듯이 냉랭한 그의 목소리에도 눈길한번 주지 않고 침대위의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어. “...빨리 처리하고 나와.” 아자젤은 꼬마에게 주의를 한번 주고 등을 돌려 걸어갔음. 새까만 머리에 어울리는 까만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며 눈치를 보다 쪼르르 방 안으로 들어갔어. 침대 위로 낑낑대며 올라가 잠든 에릭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물이 흐르고 있는 눈가를 발견하곤 손으로 닦아줘. 자면서 우는 에릭이 불쌍해 눈썹을 팔자로 휘며 쳐다보는 얼굴이 누군가와 많이 닮았어. 밖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붕대가 감긴 팔을 작은 손으로 잡고 힘을 한번 빡 준 후에 후다닥 달려나갔음. 아자젤은 달려나가는 꼬마의 뒷통수를 보다 방 안으로 들어가 벌써 피로 물들어 질척이는 붕대를 가만히 풀었어. 뼈가 보일정도로 심하게 패여있던 왼팔은 원 상태로 돌아가 있었음. 아자젤은 놀란 모습도 보이지 않고 붕대를 버린 후에 팔에 남은 핏자국을 닦아주고 침대를 정돈해주고 유유히 나갔음. 아자젤이 나가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후 에릭이 눈을 떴어. 부서질듯한 통증이 느껴지던 왼 팔이 흉터하나 남지 않고 깨끗해. 그리고 이 저택안에 우리 이외에 어린애가 있던가 하는 짧은 생각을 끝으로 다시 잠이 들었어.
이즈음에서 헬파이어클럽은 미국에서는 절대로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직이자 미 정부의 최대 협력조직이 되었음. 이전에는 그저 이상한 능력을 가진 테러집단일 뿐이었지만 대표적으로 에릭의 위력을 본 이후로 우리 쟤네 함부로 건드리지 말자.. 라고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를 봐. 에릭을 맘대로 부리는 쇼우라는 인물은 그럼 대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가늠도 안 되고 위력을 보고 싶지도 않아. 1년전에 에릭이 저질렀던 핵개발 저지사건으로 미국은 웃고 소련은 울었음. KGB에서도 뒤늦게 매그니토란 인물과 헬파이어 클럽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접촉을 시도했으나 에릭은 공황상태로 잠수요 쇼우는 코웃음을 칠뿐이었음. 소련에서도 발을 동동 구르며 뮤턴트들을 모아서 부대를 만들어보려 했으나 대외적으로는 뮤턴트들이 인간을 불신했고, 대내적으로는 쇼우가 방해했기 때문에 무산됐어. 그러다 미 정부와-정확히는 CIA- 헬파이어 사이가 좀 어색해지는 일이 생기는데 헬파이어네 꼬맹이 때문이었음.
꼬마는 돌아오는 9월이 되면 4살이 됨. 4살이 될 때까지 이름도 없어서 꼬마를 돌봐주던 가정부가 대충 soney 써니라고 부르고 있었어. 한국말로 하면 아들램 정도. 쇼우는 써니를 볼때마다 my son 이라고만 했지 도통 이름을 지어줄 생각을 안했음. 그런 건 낳은 엄마가 지어줘야지^^ 라고 떠넘겼지만 에릭은 아이의 존재 자체도 부정했기 때문에 이름을 지어줄 일도 없었어. 써니가 태어나자마자 쇼우는 갓난아기를 데리고 이런저런 실험을 해봤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강한 뮤턴트가 아닌거 같아서 매우 실망했어. 도중에 죽어버린 에릭과 찰스의 아이가 보여줬던 실험결과들과 자신의 아들을 비교해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지. 그래서 아예 관심을 끊어버렸어. 그런 무관심속에 아이는 뮤턴트로서의 능력이 발현됐다는 것도 모른 채 세 살 생일을 넘겼음. 써니는 다른 사람들에겐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아자젤을 좋아했어. 빨갛잖아. 그리고 자신을 챙겨주는 엔젤을 잘 따랐음. “아니 어쩜 자기 아들한테 이름도 안 지어 줄 수가 있는거야? 쇼우님도 너무하시지.” 엔젤은 언제나 써니를 끌어안으며 투덜거렸어. 아주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외따로 떨어지고 돈만 받고 일할 뿐인 가정부 밑에서 감정공유도 제대로 못한 채 컸기 때문에 엔젤이 왜 저런 불평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갔어. 자기는 이름 같은 거 필요 없고 그냥 평소에 불렀던 대로 써니로 불러주면 될 것 같은데 엔젤은 그게 아닌가봐.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해서 질문거리들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엔젤을 만나러 가는데 엔젤이 파랗게 질려서 립타이드와 함께 2층에서 내려와. 무슨 일인가 싶어 올라가봤더니 평소에 가정부가 절대 접근하지 말라고 타일렀던 방 문이 활짝 열려있고 아자젤이 계속 왔다갔다 해. 저 방으로 가면 안된다는 얘기만 들었지 뭐가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해. 써니는 푸른수염의 열쇠를 받아 든 아내가 된 것만 같았어. 저 방으로 가면 아버님께 크게 혼난다고 립타이드가 그랬어. 언젠가 봤던 아버님은 써니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이 너무 섬뜩해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 사람에게 혼나다니 머리가 곤두설 정도로 무서웠지만 3살난 아이의 호기심은 푸른수염의 경고보다 강했음. 몰래 안만 엿보고 온다는 게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계속 보게 되었어. 가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무서운 괴물이나 귀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음. 써니는 괴물의 존재를 그 어떤 매체로도 접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기괴한 무언가가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음. 상상과는 다르게 내부는 여느 방과 다르지 않게 깨끗했음. 오히려 좋았으면 좋았지 전혀 기괴하지 않았어. 고급스런 책장에 빼곡히 꽂혀있는, 손때가 전혀 타지 않은 책들과 흩어져있는 체스판이 방을 장식하고 있었고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는 누군가를 아자젤이 돌보고 있었어. 처음 보는 사람이야. 아자젤과 오래도록 안 사람인 것 같은데 써니는 저 사람을 처음 봤어. 써니의 존재를 발견한 아자젤이 핀잔을 줬지. 에릭이 깨어있었으면 무조건 못 들어가게 했을 텐데 지금은 정신을 잃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써니를 들여보냈음. 게다가 아이의 능력으로 에릭의 팔을 치료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써니는 피투성이가 된 에릭의 팔을 잡고 시간을 돌렸어. 팔은 구멍이 뚫리기 전 시간의 상태로 돌아갔고 아자젤의 발소리가 들리자 방을 뛰쳐나갔음.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관심이 갔어. 써니의 세 살 인생 중 관심인물 베스트 세 번째 안에 들어간거임. 별 특징도 없고 그저 눈을 감고 있는 모습만 봤을 뿐인데 자꾸만 보고 싶었어. 잘 때도 그 남자 생각 밥 먹을 때도 그 남자 생각을 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러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지자 몰래 그의 방에 가 ‘당신은 누구세요’ 라고 물어볼 작정이었어. 몰래 그의 방으로 향하던 길이었는데 아자젤이 써니를 불러 세워. 들켰구나 싶었는데 잠시 같이 갈 곳이 있다며 써니의 손을 잡고 텔레포트를 했음. 그곳은 자비에 스쿨이었어.
엠마는 아자젤의 손을 꼭 잡고 멀뚱하게 서 있는 써니를 뚫어져라 쳐다봤음. 그녀는 단지 학교로 데려올 어린 뮤턴트를 찾기 위해 세리브로를 썼다가 헬파이어클럽이 요즘 뭘 하길래 이리 잠잠하지 싶어 몰래 그 중에서 제일 만만한 아자젤의 위치를 탐색했어. 그랬는데 아자젤 옆에 웬 애가 달라붙어있더라고. 처음 봤을 땐 아자젤의 아이인가 싶어 놀랐는데 보면 볼수록 아자젤이 아닌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살짝 껴 있는 것만 같음. 쇼우? 아냐 그건 쇼우의 얼굴이라기보다는 좀 더 다른 사람에 가까웠어. 헬파이어클럽에 애가 있는 것도 신기해서 다짜고짜 아자젤의 머릿속으로 그 아이를 데리고 이리 좀 와보라 했지. 아자젤은 깜짝 놀랐음. 몇 년간 소식 없던 엠마가 갑자기 자기를 부르는 데에도 돌랐고 장소가 자비에 스쿨이라는 것에 두 번째로 놀랐음. “저기 미안한데 엠마, 나 거기 어딘지 몰라;” [좌표 말해줄테니 와.] “그거.. 나한테 말해줘도 되는거야?” [그럼 물론이지. 돌려보낼 때 기억을 지울 거거든.] 아자젤은 꼬리를 흔들며 찜찜한 기색을 감출 새도 없어 오만상을 다 쓴 채 써니를 데리고 텔레포트 했음. 써니는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주위를 둘러봤어. 고개를 갸우뚱 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살짝 우울해 보이는 꼬마의 얼굴 위로 마이애미의 까만 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채 보았던 그 남자의 얼굴이 넘실거리듯 떠오르는 거 같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대답을 요하는 말투에 아자젤은 흠흠 헛기침을 하며 써니를 레이븐 손에 들려 내보내. 여자라고는 엔젤과 가정부밖에 본 적이 없는지라 금발에 말간 얼굴을 한 레이븐이 신기해 계속 쳐다봤어. “왜? 누나가 예뻐서?” “네. 신기해요. 노란 머리카락 처음 봤어요.” “그래? 그럼 엄마가 예뻐? 누나가 예뻐?” 나름 장난을 건다고 해봤지만 써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듬. “나 엄마 없어요.” 레이븐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할 때 방 안에선 자초지종을 들은 엠마의 눈썹이 꿈틀거렸어. “그래서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좀 전에 직접 봤잖아.” 쇼우와 에릭의 아이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그래 더 이상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었어. “그럼 이름이 뭔데?” “아.” 아자젤은 말문이 막혔어. 써니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그건 이름이 아니잖아. “그 아이, 이름이 없어.” “뭐라고?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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