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은 두통에 머리를 감싸 쥐고 눈을 떴어. 분명 아자젤을 잡고 하소연 한 기억은 있는데 그 앞과 뒤가 통으로 편집된 것처럼 새카매. 내가 왜 울고 있었지? 한참을 머리를 굴려도 기억이 나질 않는 듯 했어. 문을 보기 전 까지는. 아직도 떨어져 있는 한쪽 문을 보자 떠올랐어. 아이의 비명소리와 팔이 아플 때까지 그 아이를 때렸던걸. 왜 때렸더라. 아 그래. 그 아이는 쇼우의 자식이었어. 쇼우의 새끼는 죽어도 싸잖아. 안 그래? 에릭은 키득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어. 마저 죽이러 가야지. 방문을 수리하러 왔던 관리인을 잡아채 웃으며 목을 졸랐어. "꼬마의 방은 어디야?" 관리인은 켁켁거리며 3층에 있는 문 하나 달린 방이라고 말해줬어. 고맙다고 말하고선 관리인을 던져버리고 3층으로 올라갔음. 방문을 열었지만 마이클이 있을 리가 없지. 짐 하나 없이 휑한 방을 보고 허탈하게 웃었어. 하하 어디로 숨은 건가. 이번에 찾으면 때리는 걸로 끝내지 않을 거야. 낄낄대며 저택을 휘젓는 에릭은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보였음. 다른 관리인들은 모두 놀라 숨어버렸어. 단지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뿐인데 그 살기에 억눌려 두려운 나머지 우는 사람도 있었음. 오래간만의 사냥감이야. 나치사냥을 하던 시절들의 감각이 떠올라. 지금처럼 능력이 크질 못해서 몸으로 직접 뛰어들던 때가 더 많았던 시절들. 아이 하나 죽이는데 능력을 쓸 필요도 없잖아. 한 손으로 발버둥치는 손을 결박하고, 한 손으로 목을 누르면 끝이야. 히틀러에게 충성하던 배나온 아저씨들이 아닌, 아이 특유의 보드랍고 통통한 느낌이 그의 손 아래에 짓눌릴 거야. 부드러운 머릿결과 한 품에 안겨오던, 작은 몸을 가진 그 아이를. 그렇게 마이클의 감촉이 생각났어. 웃음을 멈추고 걸음을 멈췄어. 울던 까만 눈망울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 두려움도, 분노도 아닌 의문으로 가득 찬 그 검고 우울한 눈망울이 아주 익숙해. 에릭은 미간을 찌푸렸어.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다시 마이클의 방으로 달려갔어. 혹시나 사진첩이 있을까 싶어 뒤져보려 했지만 방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어. 신경질적으로 방을 나서려 할 때 책장 밑에 흘리고 간 아이의 사진이 있었음. 주워들어서는 사진속 아이의 모습을 찬찬히 훑어. 이상해. 이 애는 쇼우의 아들이야. 그를 닮아야 하는데 왜 나를 닮은 거지? 우리 엄마를 죽이고, 찰스를 죽이고, 내 아이들을 죽인 슈미트 박사의 새끼잖아. 그런데 왜? 사진속의 아이는 에릭을 닮았어. 그것도 아주 많이. 왜 이걸 몰랐을까. 말도 안돼. 이 아이는 날 닮아선 안 돼. 불안한 듯 눈을 굴리던 에릭은 손안의 사진을 구겨 쥔 채 헬파이어클럽을 찾았어. 안 돼. 안 돼.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저택 안을 뛰어다니다 밖으로 나왔어. 푸른 풀밭과 저택 주변을 감싸 안은 숲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 푸른 정원에서 주변을 샅샅이 훑어봐도 아무도 없어. 전 지구에 저 혼자 뚝 떨어진 것 같은 고독감에 떨면서 귀를 틀어막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해. 헬파이어들이 저택에 당도하자마자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와. “왜 그래 매그니토! 무슨 일이야!” “그 꼬마 어디 있어?” “그 애는 왜 찾아?” “나 물어볼게 있어. 그 애를 낳은 사람이 누군지 물어봐야 돼.” “뭐...?” “이상해. 이상하단말야. 이걸 봐.” 에릭은 떨리는 손으로 꼬깃하게 구겨진 사진을 펴서 립타이드에게 내밀어. 방금 전까지 에릭이 보고 있던 마이클의 사진이야. “이거 왜 나랑 닮았어? 쇼우의 아들이잖아. 왜 나를 닮았냐고!” “무, 무슨.. 진정해. 일단 들어가자.” “나, 나한테 이상한 기억이 있어. 내가 말야, 꼭 그 영감의 아이를 가졌던 것 같은 기억이. 이상하지 않아?” “에릭 제발..” “꼭 내가! 내가 이걸 낳은 것 같잖아!!” 에릭은 마이클을 낳았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었어. 누가 봐도 없을 수 없는 일인데 너무나 당연하게 없는 일로 치부하고 있었어. 에릭에겐 마이클이란 아이의 존재가 있어서는 안 돼. 찰스의 아이는 자기 탓으로-정말로 그렇게 여기고 있었음-다 죽여 놓은 주제에 쇼우의 아이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 현실이야. “일단은 진정하고.. 진정해.” 아자젤은 몸도 못 가누는 에릭을 데리고 그의 방으로 텔레포트를 해. 침대 위로 던져놓고 진정제를 놓아 강제로 재워버림. 에릭은 가물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아자젤을 봐. 점점 약기운이 도는지 눈물로 벌겋게 부은 눈이 풀려감. “한숨 자.” “나.. 일어난 지 얼마 안됐는데..” “...그래도 자. 더 자둬.” “그런데.. 아자젤.” “응.” “그 애가 불쌍해...” 그러고선 잠에 빠져들었음. 고른 숨을 쉬는 모습을 보며 아자젤은 벽을 주먹으로 내려쳤어. 제정신이 아니니 아주 오락가락하지? 엊그저껜 죽여야된다 난리를 치더니 오늘은 불쌍하다고? 미친놈이야. 이 녀석은 진짜 미쳤다고.


에릭? 에릭 일어나봐. “음..” “에릭.” 부드러운 목소리에 눈을 떴어. 방안의 모든 커튼을 다 걷어 놔 눈이 부실정도로 환했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남자는 빛에 가려져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게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어. 아. 꿈이로구나. “찰스.” “이제 일어났어?” 찰스가 웃고 있어. 그런데 그 얼굴이 흐릿해. 사진 한 장 가지지 못한 채로 5년이 흘렀어. 이상하도록 목소리는 선명한데 얼굴이 기억나질 않아. 꿈속인데도. 찰스는 당황하는 에릭의 두 손을 꼭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에릭의 혼란을 달래주듯 머리를 쓰다듬어줌. “..널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냐.” “알아.” “보고 싶어” 가만히 손을 뻗어 찰스의 얼굴을 더듬어봤어. 이 감촉은 맞아. 너무나 사랑하는 그가 맞는데 얼굴이 보이지가 않아. 보고 싶어.. 눈물이 차올라서 슬쩍 눈을 감았다 떴음. 눈앞의 찰스는 사라지고 익숙한 천장만이 보였어. 찰스의 얼굴을 쓰다듬었던 손을 쥐었다 폈어. 꿈이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보지 못한 잔인한 꿈이었음. 찰스가 죽었는데 나는 왜 살아있는 걸까. 심장이 조각나는 것 같이 아파서 누워있을 수가 없었어. 빨리 이 고통을 가라앉혀야 해. 쇼우를, 그의 자식을 죽이면 괜찮아질 거야. 그 자식 앞에서 아들을 죽인 다음 네놈을 고통스럽게 죽여 줄 테다. 하지만 마이클은 이미 자비에 스쿨로 떠난 지 닷새가 되었어. 에릭은 그 말을 전해준 관리인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어. 그 꼬마를 어디로 보냈다고? 쇼우의 피를 이어받은 놈이 자비에 스쿨에 있을 수는 없어. 그렇게 되면 그곳이 더러워지니까. 당장 아자젤을 찾아가 스쿨로 텔레포트 하라고 으르렁거렸지. 아자젤은 입이 싼 그 관리인을 죽여 버려야겠다고 다짐했음. 이미 죽었지만. 아자젤은 그럴수 없다며 끝까지 버텼고 에릭은 데려가 달라고 계속 실랑이를 벌였음. 한참을 싸우다 에릭이 소리를 지르는 것을 신호로 저택안의 온 철제물건들이 날아와 그들의 주위를 감쌌어. 광기로 눈을 번뜩이며 칼 같은 날카로운 물건들을 움직여 아자젤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음. 아자젤은 공중의 칼날들을 훑어보며 피식 웃었어. “제정신이 아닌 널 죽여 봤자 세상의 비웃음을 사는 건 나뿐이지. 마이클이 그리 보고 싶으면 스스로의 목이라도 따는게 어때? 죽은 채로는 데려다 줄 수 있는데 말야.” 에이 설마 진짜 하겠어 꺼져 병진아^^ 라고 생각했는데 곧바로 그걸 실행에 옮기려는 행동에 질겁해 그의 목으로 날아가는 칼을 꼬리로 잡아챘어.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지 샐샐 웃고만 있는 모습에 눈에 불꽃이 튀어 눕혀놓고 마구 때렸어. 

이제는 지난 1년간 아무 일 없이 잘 지낸 게 신기할 정도야. 간절하게 원했던 아이를 잔인한 방법으로 잃고 나서도 씩씩하게 일을 했고 웃고 다녔던 게 오히려 미쳐보였어. 속으로 얼마나 눌러 담고 있었을지 상상도 안가. 그랬던 것이 마이클의 존재를 인지하면서부터 둑이 터진 것처럼 밀려나와 단숨에 에릭을 망가뜨렸어. 차라리 되도 않는 농담을 하면서 웃던 때가 나아. 맞아서 얌전해진 에릭의 멱살을 잡고 체념한 듯 말했어. “네 소원대로 데려다 줄게. 하지만 내 능력 말고, 정식으로 방문요청을 한 후에 데려다줄거다. 그리고 마이클은 손대지 마.” “싫다.” “말 들어.” 단호한 말투에 인상을 쓰며 바라보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잠시 멈칫하고는 샐쭉 웃었어. “아자젤. 뒤를 봐.” 아차. 아직 쇠붙이들이 주변에 떠있던걸 잊고 있었어. 혹시 나를 공격할 셈인가?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자신에게 깔린 에릭쪽에서 이상한 느낌이 왔어.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과도 하나가 에릭의 목을 깊게 찌르고 있었음. 피가 목을 타고 바닥을 적셔가. “이런 머저리 같은..!” 과출혈이 우려돼 함부로 뽑아낼 수도 없는 부위였어. “이러면.. 안 데려갈 수 없지?” 그래도 뚫린 입이라고 웃으며 지껄이고 있어. 낭패야. 이대로 가 마이클의 능력으로 상처를 치료받은 후에 그 자리에서 아이를 죽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 하지만 이내 몸을 바르르 떨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는지라 다른 생각을 할 여력도 없이 곧바로 자비에스쿨로 가. 단번에 교장실로 텔레포트한 아자젤은 너무나 놀라 멀뚱한 채로 앉아있는 엠마에게 마이클을 데려오라고 소리 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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