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는 책상에서 조심스레 빠져나와 꼭 경찰이다 손들어!란 소리를 들은것 처럼 뻣뻣하게 손을 들어 올리고 천천히 에릭에게 다가갔음. 갑작스런 상황에 총 세번 놀랐는데 아니 이게 무슨일이야 논문쓰고 있었는데 빈 공간에 에릭이 뙇 나타나더니 어린애한테 칼을 디밀고 있어 으아아;;; 하며 놀란게 첫번째. 바로 어제 본 에릭과는 묘하게 같은 사람인것 같으면서도 조금 나이들어보여서 놀란게 두번째. 찰스를 보자마자 에릭이 암시라도 걸린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아서 놀란게 세번째였음. 쭈뼛거리던 찰스는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난감하게 웃었음.

"에릭..? 벌써 온 거야;;? 아니 자네 텔레포트 능력도 있었나;;? 아니아니 진정해; 진정하고 아이를 내려놔. 어.. 그 그래. 잘 내려놔." 말 하자마자 바로 아이를 내려놓았어. 마이클은 그 자리에서 와락 울음을 터뜨렸음. 찰스는 다가가 온 몸으로 감싸안아 달래줬어. "뚝. 괜찮아. 이름이.. 그래 마이클이구나. 이제 괜찮아." 부들거리며 우는 마이클을 달래고 뒤에 멀뚱하게 서 있는 에릭을 쏘아봤음. "이틀동안 생각 좀 정리하고 온 다더니. 이게 자네 생각인건가?"

사실 놀란것은 두번째로 차치하더라도 지금 찰스는 에릭에게 크게 실망했어. 에릭의 갑작스런 임신으로 벙쪄있는 상태였는데 어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향후 미래에 대해 얘기하다가 크게 싸웠거든. 에릭은 그 몸을 하고도 자기는 쇼우를 죽여야 하고, 인간은 우리를 적으로 돌릴것이라며 찰스와 설전했음. 찰스는 찰스대로 이번 임무에서 무조건 에릭 넌 빠져! 라고 했다가 한대 맞을..뻔하기도 했지만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이런 갈등이 계속 이어지면 아이까지 포함한 세사람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결국 에릭은 이틀간 머리좀 식히고 온다며 저택을 잠시 떠났었음. 그런데 지금 이 사태는 뭐야.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났는데 인간으로 보이는 아이를 죽이려 하고 있어. "아이건 어른이건 닥치지 않고 죽이겠다 이건가? 에릭, 말을 해봐." 라고 기세좋게 쏘아붙인것까진 좋았는데 암만봐도 에릭이 이상해. 묘한 표정으로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보길래 불러봐도 별 반응 없이 계속 쳐다보고 있어. 에릭의 눈치를 보며 마이클을 쇼파에 앉혀놓고 담요로 덮어준 후 그에게 천천히 걸어왔지. "에릭.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말을 해야 내가 알지." 손을 뻗어 에릭의 어깨에 얹자 그의 감정이 폭풍처럼 몰려와. 당혹, 두려움, 의아함과 놀라움. 그리고 에릭은 나사가 풀린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음. 찰스는 깜짝놀라 에릭을 붙들었고, 에릭의 떨리는 손이 그의 얼굴에 닿았음. 얼굴을 더듬으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어. 가까이서 본 에릭의 얼굴은 너무나도 어두워서, 찰스는 그제야 지금 눈 앞에 있는 에릭이 어제까지 함께 있었던 에릭이 아니란걸 알게됐음. 이게 어떻게 된거지;;

에릭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찰스만 바라봤어. 꿈에서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얼굴이 이렇게 눈 앞에, 또렷하게 있어. 저 파란 눈과, 발간 입술과 약간 곱슬거리는 브루넷의 머리카락. 꿈이라면 이건 무슨 지독한 꿈인걸까. 쇼우가 찰스라는 이름을 입 밖에도 내는걸 싫어하기 때문에 생각속에서라면 모를까 입 밖으로는 잘 내뱉지 않던 이름이었어. 그의 이름을 입 속에서 더듬거리다 겨우 한숨처럼 내뱉었음. "찰스..."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졌어. 찰스는 에릭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화를 내려던것도 잊어버렸음. "응, 그래. 나야." "네가 너무 선명해 찰스.. 네가 느껴져." "에릭. 무슨일이 있었는지 말을 해줘." "꿈이구나." "꿈이 아냐." "미안해.. 미안해 찰스. 네 얼굴을 잊어서. 왜 어젯밤에는 보이지 않았던걸까? 이렇게 선명한데." 찰스의 모습을 한톨이라도 놓칠까 시선을 떼지 못한채로 펑펑 울기 시작하는 에릭은 도저히 작금의 상황을 설명할수 있는 상태가 아닌것 같았음. 아니 그리고 죽는다니 이 창창한 나이에; 그의 머릿속을 읽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어째. 우느라 숨도 제대로 못쉬는 사람이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리가 없지. 결국 읽을수밖에 없었어. 에릭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찰스는 제대로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음. 이게 다 뭐야? 왜 이런 고통스러운 기억을 갖고 있는거지?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과, 에릭의 뱃속에서 강제로 내보내진 첫째 아이, 러시아에서 당한 일들과 그로 인해 죽은 둘째아이, 그 이후의 일들, 마지막으로 지금은 쇼파위에 앉아있는 마이클에 대한 기억. 그 당시 에릭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읽혀졌는데 너무나 감당하기 힘들었어. 심장이 두근덕거리고 토기가 밀려올라와. 벌써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어. "God sake...God.. 에릭... 세상에..." 찰스 자신도 부들부들 떨면서 에릭의 목을 꽉 끌어안았어. "이걸 혼자 어떻게 견딘거야.." 순식간에 모든 오해화 의문이 풀렸어. 에릭의 반응도 이해가 갔고. 지금 본 일들은 어제 찰스와 싸우고 나갔던 에릭이 불과 몇달 후부터 고스란히 겪을 일이었어.

에릭은 발작하듯 찰스의 이름을 부르며 맞잡은 손을 꽉 붙들었어. 이 손을 놓으면 또다시 사라질 것만 같아서 도저히 놓을수가 없음. 처음에 찰스를 봤을땐 마이클의 농간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마이클은 찰스를 본 적도 없고 그런 사람이 있었던것도 모르는 아이란말야. 환영일것만 같은 사람이 천천히 걸어와 말을 걸고 손을 잡자 꿈도 환영도 아니란걸 알게되었음. 다시 만나게 된 찰스는 기억속에서보다 좀 더 통통했고 눈은 좀 더 새파랬음. 그가 에릭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달래주자 울음은 더욱 멈출수가 없어. "나는 이렇게 따뜻한 위로를 받을 사람이 아니야.. 너에게 죄를 지었어 찰스. 찰스.. 너의 아이들이 모두 죽었어. 나 때문에.. 내가 지키질 못했기 때문에. 모두 세상의 빛 한번 보지 못하고 죽어버렸어." "아냐. 자네 탓이 아냐 에릭. 그 아이들이 죽은건" "미안해.. 내가 약해서 지키지 못했어. 미안해." "울지마. 그건 그 아이들의 운명이야." "날 원망할거야. 낳아주지도 못했다고.." "원망하지 않아. 그 아이들은 여전히 자네를 사랑해. 내가 이렇게나 자네를 사랑하는데, 내 아이들이라고 사랑하지 않겠어?"

분명 날 닮아서 이해심이 많을거야 ㅎㅎ 울다 웃던 찰스는 탈진해가는 에릭을 꽉 끌어안아줬음. 부어가는 눈가를 닦아주며 다시 한번 미래에서 온 에릭을 바라봤어. 지금의 에릭보다 약간 포동해 보였지만 얼굴은 매우 푸석했어. 예쁘던 브루넷의 머리카락은 퍼석했고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낯빛은 매우 어두웠음. 둘째아이가 죽고난 후 2년동안 에릭은 제정신이 아니었던지라 자기 관리를 할 새가 없었지. 너무 울어서 떨고 있는 에릭의 얼굴을 감싸안고 이마에 키스를 해주며 천천히 머릿속에 들어갔음. 진정해. 괜찮아. 끊임없이 달래는 말들을 전하며 에릭의 머릿속을 정리해감. 머릿속은 완전 엉망이었음. 일전에 뮤턴트들을 찾으러 간 정신병원에서 이와 비슷한 파장을 느낀적이 있었어. 에릭은 그래도 용케나마 정신을 붙들고 있는게 다행일 정도였음. 실타래같이 엉켜있던 정신을 살살 달래서 풀었어. 찰스를 마주치자마자 엉킨 실타래는 마치 풀먹인 실처럼 단단해지며 걷잡을 수 없이 엉키기 시작해서 좀 오랫동안 마주앉아 머릿속을 정리해줌. 에릭의 괴로운 기억으로 인한 고통때문에 간간히 신음하면서. 무거웠던 머릿속이 가벼워지는듯한 느낌을 받으며 찰스가 더더욱 또렷이 눈에 들어와. 찰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기를 보고 피식 웃고 있어. 찰스는 정신을 풀어주던 작업과 동시에 마이클에 대한 암시를 함께 걸었음. 마이클을 죽이려 하면 모든 오감이 차단당하게끔. 물론 에릭은 모르지만. 마지막 한 올까지 풀어내고 깨끗해진 안을 바라보고 만족한듯이 에릭의 볼을 감싸쥐고 가벼운 키스를 해줬지. "수고했어 에릭." 혼란스럽고 항상 끓어있던 속이 가벼워졌어. "찰스.." "이제 괜찮아?" "응.." "다행이야. 너무..망가져 있었어. 다른 사람들은 손 쓸수 없을 정도로. 내가 그렇게 만든것 같아서 미안하네."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아. 둘다 너무 지쳤어. 에릭은 한동안 찰스의 품에 머리를 뭍고 가만히 있었고 찰스는 그의 등을 토닥여줬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마이클은 이게 무슨 일인지 전혀 알수가 없어. 갑자기 눈이 파란 아저씨가 나타나더니 에릭이란 사람이 얌전해졌어. 하지만 다시 에릭이 자신에게 해꼬지를 할까봐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꼼질대자 찰스가 그 기척을 눈치채지. 웃으며 에릭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를 푹신한 곳에 앉힌뒤에 마이클에게 다가갔음. "안녕. 나는 찰스 자비에란다. 너는 누구니?" "마이클.. 아, 아니 미하엘 쇼우요." 아이는 마이클이라 했다가 에릭의 눈치를 보며 얼른 미하엘이라 말해버렸음. 찰스는 바람빠지듯이 웃으며 그럴 필요 없다고 달래줬지. "괜찮아 마이클. 두려워 할 필요 없어. 에릭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럼요? 나쁜사람이 아니면 왜 나를 때려요?" "그건.. 좀 더 크면 알게 될거야." 마이클을 끌어안자 아이의 고통과 분노,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졌어. 이것봐 에릭. 이 아이가 이렇게 무서워 하고 있어. 자넨 이 아이에게 그래선 안돼. 좀 더 유해질 필요가 있어. 자네가 낳은 아이니까. 텔레파시로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었어. 에릭도 그걸 아는데,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따라주질 않는거잖아. 자신이 낳았지만 마이클의 반은 쇼우가 만들었지. 에릭의 인생을 뭉개버린. 오 이런. 쇼우를 생각하자 다시금 끓어오리는 분노를 애써 가라앉히는 에릭에게 다가가 머리를 끌어안아줬음. "너희들 사이의 일은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닌거 같구나." "...미안해." "쉬. 괜찮아. 그러니까 더 이상 미안하다고 하지 말아줘."


그리고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온것 같아. 에릭.


머릿속으로 울리는 목소리에 에릭은 다급히 찰스를 바라봤지만, 가만히 손끝으로 마이클을 가리킬 뿐이었음. 아이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어. 에릭이 이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과거가 뒤바뀌게 될 가능성이 커지는 거지. 마이클이 사라지면 같은 시공간 아래 에릭이 두명이나 존재하게 될 판이야. “하지만 난 모든 걸 알고있어. 돌아가면 안돼. 쇼우를 없애야해!” “아니. 안돼.” “찰스! 내 말 들어!” “그렇다면, 미래의 에릭은 그자를 없앨 만한 힘이 있나? 내가 아는 사실로는 자네는 마이애미 해변에서도, 미래에도 그에게 손하나 대지 못했잖아. 자네의 힘을 불신하는 게 아냐. 충분히 강해. 하지만 지금은 아냐.” “지금이 아니면 언제 죽일수 있는건데! 찰스, 널 위해서야. 널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아.” “진정 날 위한다면 지금 돌아가줘. 어서.” “아니면 지금 도망가. 나랑 같이 먼데로 도망가줘. 나 지금 필라델피아에 있어. 필라델피아로 가서.. 아, 나랑 있으면 그자와 만나게 되려나? 그러면 나를 내쫒아.” “에릭.” “날 쫒아내! 그래야 네가 살수있어 제발.. 찰스. 부탁이야.” "오, 날 너무 약하게만 보는것 같은데? 에릭. 이것 하나만 알아줘. 네가 돌아간 후에도 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걸 다 알고 있겠지. 미래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마냥 손 놓고 있진 않을거야. 나 역시 자네와 우리의 아이를 두고 죽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 걱정말고 돌아가. 돌아갔을때 너의 시간이 바뀌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잖아?" 에릭은 환하게 웃고있는 찰스를 보며 울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음. 찰스는 점차 희미해져가는 마이클을 안아들어 이마에 짧게 키스해주며 아이의 머릿속에 잔재한 에릭에 대한 공포를 조금 건드렸어. 극한의 공포에서 일말의 두려움으로. 그리고 에릭에게 안겨줬지. 에릭은 엉거주춤하게 마이클을 받아들었고, 마이클은 에릭의 눈치를 봤지. 찰스는 마이클을 바라보며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였음. "괜찮아. 이제 더 이상 에릭 아저씨가 널 혼내지 않을거야. 아저씨가 약속할게. 자 마이클. 이제 레이븐 선생님이 있는 너의 시간으로 돌아가야지. 어떻게 하는지 알겠니?" 마이클은 당연히 알 수 없었고 찰스는 곤란하게 웃으며 아이가 제대로 능력을 쓸 수 있도록 이끌어줬음. 마이클이 서서히 능력을 발동하는 순간 에릭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지금 돌아가면 더 이상 찰스를 만날 수 없을까봐. 마이클이 능력을 쓰면 될테지만 지금처럼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자유자재로 쓸 때까지는 한참 더 커야 할거야. 에릭은 조바심이 남. "잠깐, 잠깐 찰스. 하루만 있다 가면 안될까?" 너무도 애절하게 부탁을 해왔지만 찰스는 더 이상 받아주면 안된다고 생각해. 안된다고 하자 크게 실망을 했어.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찰스의 손가락을 잡았음.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따뜻한 손가락을 잡자 오열하듯 눈물이 터져나왔지. "그럼 반나절.. 아니 한 시간만이라도.. 십분만.. 십분만 더 있게 해줘." 고개를 들어 찰스를 바라봤어. 몇 달후면 내 눈 앞에서 죽을 그 사람을 다시한번 눈에 한 가득 새겼어. 행여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놓칠까봐 두렵고 꿈에서조차 얼굴을 볼 수 없을까봐 무서워. 시야를 흐리게 만드는 눈물방울들을 원망스레 떨궈. 찰스는 소매로 눈물을 닦아주며 입술에 키스를 해줌. "Good bye my friend. My dear. My love." 찰스도 눈물 한줄기를 떨구며 마이클에게 잘가라고 인사해줬음. 마이클은 눈을 질끈 감으며 능력을 썼어. 순식간에 시야에서 두 사람이 사라지고 서재는 다시금 찰스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지. 찰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어. 짙은 정적과 사람들이 사라진 후에 남은 따끈한 여운이 그를 감싸안아. 한참후에야 한숨을 쉬며 얼굴에서 손을 떼고 창 밖을 바라봤음. 레이븐들이 외출했다 돌아왔는지 시끌벅적 해졌지. 저 말괄량이 아가씨가 선생님이 된다니. 피식 웃음이 나왔어. 다시 논문이라도 뒤져볼까 하고 책상위에 앉았지만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아. 에릭은 잘 돌아갔을까. 마이클은.. 내일은 변호사를 만나서 유언장이나 갱신해야지. 웨스트체스터의 낡은 고성. 그 안의 서재에서 찰스는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잠시 눈을 감았어. 1962년 여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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