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븐은 수업중에 아이들에게 문제를 풀어보라 시간을 내 주고 밖에서 나는 소리에 창밖을 바라봤음. 션과 알렉스와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며 노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는 자비에 성의 정원은 하얀 눈으로 뒤덮혀 있었고 밝은 햇살이 레이븐의 블론드를 더욱 빛나게 비추고 있었어. 문득 시선이 느껴지는 쪽을 보니 마이클이 문제를 다 풀고 빤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 웃으며 아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음. 열흘이 지나면 6살이 되는 마이클은 그동안 부쩍 커서 또래 아이들보다 한 뼘이나 키가 컸음. 송아지 같이 큰 눈을 깜빡이며 웃는 모습을 보니 마치 에릭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처럼 닮아 있어. 그리고 그날 이후로 1여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 에릭이 걱정되기 시작했음.

1년전 그날, 마이클과 에릭은 사라진지 삼십분만에 시내에서 발견됐어. 온 자비에 성을 발칵 뒤집어 놓고는 나 시내니까 데리러 오라고 전화 한통 한게 고작이었지. 사람들의 눈 때문에 굳이 자동차를 끌고 시내로 나갔을때 에릭은 공원 밴치에서 잠든 마이클을 끌어안은 채 멀뚱하게 앉아있었어. 기가막힌 레이븐은 에릭의 품에서 마이클을 급하게 빼앗아들었고 에릭은 빼앗긴 자세에서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알렉스에게 이끌려 차에 올라탔음.

스쿨로 돌아가는 내내 레이븐은 있는대로 화를 내며 에릭을 다그쳤지만 정작 에릭은 말이 없었어. 합승했던 아자젤은 그의 눈빛에서 사라진 광기를 보고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정황을 알 수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지. 에릭은 레이븐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 다만 과거에서 찰스와 함께 있던 몇 시간이 현실로 돌아와보니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웃길 따름이었지. 걱정말라던 찰스의 말과는 달리 현실은 전혀 변한게 없었고 레이븐의 항변은 계속 되었지. 그 찰스는 에릭의 기억과 똑같이 죽었겠지. 필라델피아에서 돌아온 날 이후부터 찰스가 이상스레 다정해졌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만이라도 정착하겠다는 얘기를 했을때 그가 눈물을 보였던 이유도 이제서야 알것 같았어. 찰스는 자기가 죽는다는걸 알고 있었던거임. 울컥 하며 눈가가 따가워졌어. 손을 들어 가렸지만 이미 흘러나오는 눈물은 가려지지 않았지. 갑작스런 에릭의 눈물에 레이븐은 말을 멈췄어. 미쳐서는 눈이 형형한 채로 마이클을 죽이고 레이븐마저 해하려던 사람이 30분만에 돌변해서 우울한 분위기를 뿜고 있으니 이상하지. 잔뜩 긴장해서 마이클을 꼭 끌어안고 있는데 에릭이 말해. 나 찰스를 만났어.

찰스의 이름을 꺼내자 레이븐은 정색을 했어. 정말 미쳤다고. 미쳐서 제정신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눈앞에 아른거리냐고 비꼬았지. 레이븐은 아자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직 에릭이 미쳐있는줄 알고 폭언을 쏟아부었음. "찰스가 죽고서 당신이 무얼 했어? 장례식에 한번 와보기라도 했어? 오빠를 죽인 사람들 편에 서서 인간들을 해쳤으면서!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고 나도 죽이려 했으면서! 당신은 찰스의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도 없어!" 레이븐의 일갈에 에릭은 창가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덜덜 떨고있어. 더 이상 울지 않기 위해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채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어. 레이븐도 에릭의 사정을 모르지 않지만 그동안 마음에 담아왔던것도 있고, 그가 찰스의 원과는 정 반대의 행보를 걷고있는 것이 너무나도 분해 한꺼번에 쏟아내버렸음. 에릭이 울음을 참느라 떨고 있는걸 보자 바로 후회를 했어. 분함과 미안함에 레이븐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음. 아자젤은 한숨을 쉬며 레이븐을 다독여줬고 그 와중에도 마이클은 쿨쿨 잘 자고 있음.

엠마는 두 사람이 스쿨에 도착하자마자 머리를 훑었어. 물어보는건 딱 질색이니 편하게 능력을 쓰는 편을 택했지. 각각 에릭과 마이클의 시점에서 살아 움직이는 찰스가 보여 매우 놀라워했어. "어머나, 두 사람.. 교수를 만나고 왔어." 말을 들은 레이븐이 놀란 사이 엠마는 에릭의 머릿속에서 찰스의 흔적들을 찾았어. 망가진 정신을 되돌려놓은 거나 마이클에 대한 장치라거나. 그리고 찰스 없이 혼자 남은 에릭을 위한 장치를 곳곳에 해 놓은게 느껴졌음. 이사람들 정말 서로를 많이 사랑했구나. 엠마의 감탄도 잠시 아자젤은 얼른 돌아가야 한다며 에릭을 부추겼음. 새벽같이 돌아갈 작정이었지만 많이 지체되었어. "쇼우님이 아시면 큰일난다. 얼른 돌아가야 해." 귓가에 작게 소근거리는 소리에 에릭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다 빨개진 눈가를 들어 아자젤을 애처롭게 쳐다봤어. 뭐야; 또 뭐야 아오 이자식 진짜 ㄱ-;; "찰스의.. 무덤만 보고 가면 안될까?" 꽉막힌 목소리로 처연하게 부탁해오는 에릭에게 결국 꼬리를 내려버렸음.

찰스의 묘는 스쿨 뒷편의 작은 언덕에 마련되어 있었어. 비석 앞에는 꽃들이 몇다발 놓여있었어. 학생들과 이제는 선생님들이 된 엑스베이비들이 매일 싱싱한 꽃을 놓아 작고 소담한 묘는 제법 화사했음. 비석에는 찰스의 풀네임과 생몰년이 예쁜 글씨로 새겨져 있었고 에릭은 손을 뻗어 찰스의 이름을 만져보려다 손가락이 닿기도 전에 주먹을 꽉 쥐었어. 30분전까지도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며 웃던 사람이 이 밑에 누워있다라.. 믿기지 않아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이내 턱이 떨리고 목이 막혀 숨이 걸렸어. 그렇지만 차마 울 수는 없었음. 레이븐의 말마따나 자신은 찰스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었고 장례식에 와보지도 못했어. 그리고 현재는 그의 이상을 배반하고 있지. 내 손이 닿아 찰스의 이름이 더럽혀지면 안돼. 숨을 크게 들이마쉬며 아자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어. 불안하게 요동치던 꼬리가 멎었음. 에릭은 고요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자비에스쿨 사람들을 보았고, 마지막으로 레이븐과, 레이븐이 안고 있는 마이클에게 시선을 두었음. 부정했던 시간이 길어 정말 저 아이가 내 아이다 라 딱부러지게 말하기 껄끄럽지만 그래도 찰스덕에 조금 마음이 가는것도 있는것 같아. 곤하게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울것 같은 표정의 레이븐을 바라보며 웃었어. "그녀석.. 아니, 마이클을 잘 부탁해."

레이븐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들은 검은 연기를 뿜으며 사라졌지. 그렇게 간 지가 1년도 더 지났어. 레이븐은 에릭이 사라지고 나서야 찰스의 유언장을 떠올렸어. 기본 골자는 찰스 프란시스 자비에 소유의 모든 재산은 에릭 랜셔와 레이븐 다크홀름 자비에에게 일임한다는 내용이었음. 그리고 찰스의 책상 서랍에 잠든 에릭에게 쓴 편지까지. 찰스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편지는 읽어보지 않았어. 생각해보니 그 부탁을 들었던게 그가 죽기 꼭 일주일 전이었어. 엠마에게 전해들었던 에릭과 과거의 찰스와의 만남을 들으니 찰스는 자신이 죽을거란걸 알고 있었다고 유추했어.  그런 오빠를 안타까워할 여지도 없이 학교는 너무나 바쁘게 돌아갔음.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오고, 학생들의 밸런스에 맞는 커리큘럼을 작성하느라 눈코뜰새가 없었지.

그 안에 아주 가끔 립타이드나 엔젤이 와서 마이클을 보고 가곤 했지만 에릭이 온 적은 한번도 없었지. 그들에게 에릭의 안부를 물으면 으레 대답을 피하며 사라졌어. 매스컴에도 가끔 매그니토에 대한 가십거리나 나올 뿐이었음. 도대체 에릭은 왜 보이질 않는걸까.

마이클의 능력은 나날히 발전하고 있었어. 식물과 동물의 생채시간을 멈출수 있는것과 아주 약간의 타임롤백 정도가 가능해졌음. 맛있는 간식이 있는 날엔 자꾸 간식을 받던 시간으로 가서 받아먹다가 엠마에게 걸려 혼이 난 적도 있음. 엔젤과 아자젤은 크리스마스라며 작은 선물을 사왔고 마이클은 오래간만에 보는 아자젤의 얼굴에 기뻐하며 뛰어들어 안겼지. 지난해는 사정이 있어 안된다며 집에도 가지 못하고 스쿨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했는데, 올해는 반드시 집에서 모두와 보내고 싶다며 마구 떼를 썼음. 아자젤은 매우 난감해하면서 안된다며 딱 잘라 말해. "미안하다 마이클. 올해도 같이 있을수가 없구나." "왜! 왜애! 집에 가고 싶어!" "여튼 안돼. 마이클, 아버지가 오면 안된다고 하셨어." 쇼우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거짓말을 했어. 정말로, 마이클이 와 봤지 좋은 상황이 안되기 때문임. 에릭아저씨도 보고싶다며 엉엉 우는 마이클을 꼭 끌어안아주며 선물을 안겨주곤 애써 웃었음. 레이븐이 조용히 물었지만 헬파이어 클럽에 관한 일이라 관여하지 말라고 답할 뿐임.

그 즈음 헬파이어클럽은 완연히 미국을 장악해버렸어. 전 세계의 인간을 정복해야 한다는 쇼우의 계획이 반은 성공한 셈임. 그리고 휘하에는 많은 뮤턴트들이 들어왔어. 저택엔 여전히 헬파이어클럽의 원년멤버들만 머물 뿐이지만 전국에 지부를 두고 긴밀히 연락을 주고 받고 있음. 미국을 꽉 틀어쥔 쇼우는 이제는 CIA를 거치지 않고 직접 미 정부와 소통하기 시작함. 제일 먼저 한 일은 인간의 통제와 감시. 우리 뮤턴트들은 그동안 인간들에게 수 많은 박해를 받으며 비참하게 살아왔다. 도처에는 아직 많은 뮤턴트들이 있고, 혹 그들에게 피해가 갈 우려기 있으니 인력을 배치해 인간들의 행동을 감시해주길 바란다. 의회는 쇼우의 압력에 법안을 상정할 수 밖에 없었고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음. 곳곳에서 인간들이 들고 일어났지만 법안이 책정된 후 바로 실효성을 가지는 바람에 시위들은 실패로 돌아감.

그 즈음 자비에 스쿨을 주축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뮤턴트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피를 흘리며 지금 이 권리를 쟁취했고 인간들에게 복수를 하는것이 정당하다는 터무니 없는 다수의 주장들에 가로막혀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음. 실상 피를 흘린건 매그니토 혼자 뿐이었지만 대부분 주류에 편승해 숟가락을 살포시 얹을 뿐이었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매그니토의 무용담에 탄복하며 헬파이어 클럽에 가담한 것도 적지 않아. 그런데 몇년전의 러시아 사건 이후로 행방이 묘연한 그를 두고 그가 과연 실존인물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 뮤턴트들도 있음. 항상 사건이 일어나면 재빨리 해치우고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지는 통에 실제로 본 사람들이 많지가 않기 때문이었음.

그들의 매그니토는 어디로 연기처럼 흩어진게 아니라 헬파이어클럽의 저택 안 유리방에 다시 갖혀 있었음. 집안이 안정되야 바깥일도 제대로 한다고 쇼우에게 에릭은 굉장히 거슬리는 일이 아닐 수가 없어. 1년전 그날, 오후를 넘겨 저택에 도착한 두 사람을 심문하다시피 물었지. 자비에 스쿨에 다녀온걸 확인하고는 아자젤을 패대기쳤어. 깜짝 놀란 에릭이 말릴 새도 없이 쇼우는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부었고, 아자젤이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을 뒹굴때가 되서야 겨우 막아설 수 있었음. 한발씩 다가 올 수록 공포로 몸이 떨리지만 내가 부탁했던거라고, 마이클이 보고 싶어서 잠시 갔다왔던것 뿐이라며 그만하라고 애원했어. 

쇼우는 느긋한 걸음으로 두 사람 앞에 섰다가 에릭의 목을 잡아 들었음. "누가 나의 허락 없이 밖에 나가도 된다 했지?" 에릭은 숨이 막혀 컥컥대면서 불안하게 쇼우의 눈을 바라보았어. 그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음. "하필 간곳이 자비에 스쿨이라니. 그곳에 건방진 텔레패스가 뭍혀있다지. 그녀석이 보고 싶어 갔었나?" "아, 아냐.. 난 정말 마이클을.." "이런, 그 아이의 이름을 모를 줄 알았는데. 넌 굉장한 엄마야. 네가 마이클에게 관심이 없는건 이미 알고있어. 버러지만도 못하게 여겼으면서 이제와서 왜 보고싶다 찾아간걸까? 손톱만한 손속의 정에 이끌려서? 오, 아니지." 쇼우는 에릭을 던지다시피 내려놓고는 바닥에 엎어져있는 아자젤을 발로 찼어. 에릭이 자신에게 아무런 보고도 하지 않고 단독으로 행동한게 매우 맘에 들지 않아. 마치 개가 작게 열려 있는 문 틈으로 뛰쳐나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주인이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 같은. 그리고 돌아온 개를 호되게 혼내는거지. 쇼우는 에릭이 자비에스쿨에 갔던 이유를 알지 못하니 찰스의 흔적이 보고 싶어 갔던 것으로 오해하고 있어. 괘씸해서 더더욱 혼내주고 싶어. 네 주인은 나인데 감히 아직도 다른 사람을 품고 있다니 벌을 줘야겠지.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천천히 빼내 펼쳐보이자 나치문양이 새겨진 동전이 눈 앞에 나타났어. 에릭이 복수의 증표로 몸에 지니고 다니던 그 동전은 아니었지만 나치의 동전이라는 것이 같았음. 에릭은 동전을 보자마자 몸이 굳었어. 동전을 움직이라는 쇼우의 말에 손을 뻗어 움직이려 했으니 움직이지 않았어. 깜짝놀라 쇼우와 동전을 번갈아 보며 바라보면서 능력을 써보려는데 동전은 조금 들썩일 뿐 크게 움직이지는 않음. 너무나 큰 두려움에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어. "가엾은 에릭. 건물도 들어올리던 네가 왜 동전하나를 움직이지 못하는걸까?" 쇼우는 그때와는 달리 총을 들고 있지는 않았어. 그때의 경험으로 이 동전을 움직이지 못하면 아자젤이 죽게 될것만 같아 온 힘을 다 해 동전을 들어올렸음. 조금 심하게 높이 떠올랐지만 다행히 동전은 들어올렸는데, 왜 갑자기 동전을 꺼낸 것일까. 안도하던 찰나에 떨어진 말에 청천벽력이 떨어진 것 같았음. "내 말 잘 들으렴. 셋을 셀테니 그 동전으로 아자젤을 죽여라." 쇼우는 심술을 부리고 싶었어. 어머니가 죽어가는걸 지켜볼 수 밖에 없던 무력하던 시절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서 너는 무력하다는걸 각인시켜주고 싶었지. 세월은 많이 흘렀고 에릭의 능력은 동전따위는 숨쉬는것처럼 어렵지 않게 들어올릴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너는 내 앞에서는 무력하다는걸 얘기해주고 싶었음. 그래서 타겟으로 잡은게 앞에 널부러져 있는 아자젤이었음. 아자젤은 솔직히 자다가 봉창두드려 맞은 격임. 이 미친놈이 목에 칼꽂아서 피는 콸콸 나오는데 병원에도 못데려가고, 애가 좀 능력이 특별나길래 치료나 시키고 돌아올까 했는데 하룻밤 자고 온다고 고집부려서 자고온 결과가 지금 이거거든. 나는 데려다 주고 데려온 죄밖에 없는데 어이구... 하지만 쇼우는 그런것 따위 알바 아니지. 중요한건 에릭이 허락도 없이 자비에스쿨-라고 쓰고 찰스라고 읽나-에 다녀왔다는 거니까. 온 몸이 아프고 피가 나는 와중에 자길 죽이라는 소리가 들려서 힘겹게 고개를 들었어. 에릭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갈팡질팡하며 떨고 있고 쇼우는 웃고 있지. 표정을 보아 하니 무언가 이 상황이 에릭에게 굉장한 트라우마 같지만 아자젤은 그때 없었으니 둘 사이의 일은 몰라. 여튼 얼결에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라 얼떨떨 하고 있는데, 에릭이 동전을 집어던지며 발악을 해. "웃기지마..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때는 몰라도 지금은 달라! 죽어야 할 사람은 너야!" 키잉 하고 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사방에서 철로 이루어진 것들이 날아와 쇼우를 덮쳤음. 그 틈에 에릭은 아자젤을 들쳐업고 피하려는데 뒤에서 강한 충격이 달려들어 두사람 다 나가떨어졌어. 힘없이 늘어진 채로 바닥에 굴러떨어진 아자젤은 머리를 부딪쳐 졸도하고 말았고 에릭은 벽에 박혀 콜록거림. 결국 또 지고 말았어. 아무리 힘을 키워도 쇼우에겐 당할수가 없는것만 같음. 먼지가 걷히고 나자 험악하게 인상을 쓴 쇼우가 에릭의 머리채를 잡아챘어. “반항하는 쥐새끼는 가둬두는게 약이지.” 에릭은 이런 표정의 쇼우를 본 적이 없기에 공포로 몸이 떨려왔지만 곧 머리채를 잡아끄는 악력에 따라 질질 끌려갔음.

소란을 듣고 달려온 립타이드와 엔젤이 급하게 뒷수습을 했고 아자젤의 상처를 치료했어. 정신을 차리자마자 에릭의 행방을 물었는데 립타이드는 침통한 표정으로 유리방에 다시 갖혔노라고 말했음. 일이 안좋게 돌아가 걱정을 하고 있는데 쇼우가 직접 아자젤에게 찾아왔음. 어제와는 달리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어서 좀 오싹했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쇼우님. 처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아니 아니지. 자네는 잘못이 없어." 쇼우는 아자젤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어제일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음. "내 너를 아끼지만, 어제는 에릭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어쩔수 없었다. 내가 이러는 이유는 다른게 아냐. 다 에릭을 위해서지. 그 아이가 얼마나 찰스라는 녀석을 그리워하며 힘들어하는지 보았지 않느냐? 난 앞으로 에릭에게서 찰스라는 무거운 짐을 덜어줄것이야. 그의 잔해가 남아 있지 않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함으로." 아자젤은 아 이런 망했구나 싶음. 쇼우가 질투를 하고 있어. 단지 이전에 살던 집에 가서 그를 그리고 왔다는 것 만으로도. 지금쯤 에릭이 어떻게 널부러져 있을지 몰라. 쇼우가 엔젤과 함께 업무를 위해 의회로 떠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질질 끌고 방 밖으로 나왔어. 다시 유리방에 갖혔다니; 그게 아직 있었어?;; 다른 무엇보다 그 곳은 이 곳에 온 이후 최초로 안좋은 일이 생겼던 곳이라 걱정이 됐어.

3층 맨 끝쪽, 다락방같이 우중충한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갔어. 단단히 잠겨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 위에 알몸으로 웅크리고 있는 에릭의 흰 등이 보였음. 여기저기 멍이 들어있었고 목덜미쪽엔 진한 키스마크가 그려져 있었음. 안쓰러운 등을 향해 손을 뻗으려다 꾸욱 말아쥐고 말았어. "미안하다 매그니토. 내 불찰이다. 그때 널 말렸어야 되는데.." 에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아자젤의 잘못도 아니었고, 이제와서 사과가 다 무슨 소용이야. 서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누워있자니 예의가 아닌거 같아 몸을 일으켰어. 쇼우와 찰스가 아닌 타인에게 알몸을 보여주는건 처음이었지만 아무렴 어떨까. 이미 에릭에겐 수치심이란건 남아있지 않은것만 같았어. 아자젤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음. 같은 동성인데 왜이럼;; 싶었지만 어째선지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어. 슬몃 눈만 마주치려 했는데 몸이 보이는건 어쩔수가 없지. 창백하고 조금 살이 오른 몸에 새겨진 오래된 흉터들과 얇은 허리.. 노골적으로 훑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아자젤에게 다가가 얼굴에 붙어있는 반창고쪽을 쓰다듬었어. "아팠겠네.." "아, 아니. 괜찮아." "..그래.. 미안하다." 사과를 하며 아프게 웃는 모습이 서러워보여서 꽉 끌어안아줬어. 매그니토는 이 세상에서 대적할 자가 없는 강한 사람 이지만 에릭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은 처연한 남자일 뿐이야. 그의 양면을 알고 있는 아자젤은 동정심 없는 차가운 사람에서 마음이 아프고 쓰라린 것이 어떤건지 아는 사람이 되었지. 에릭을 도닥여 주며 한동안 잊고 있던 수첩이 떠올랐어. 조만간 되돌려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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