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자젤은 수첩을 들고 유리방으로 갔어. 가는 내내 이걸 뭐라고 하며 줘야 할까 고민을 했는데, 방앞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소리들에 머릿속의 생각들은 모두 싸그리 날아갔음. 어떠하니 에릭? 우리 마이클의 동생을 만들어보자꾸나. 다정한 쇼우의 목소리와 에릭의 울음소리, 그리고 비명섞인 신음소리가 들려옴. 문 앞에 딱딱하게 굳어서 그 둘이 정사를 벌이는 소리를 고스란히 다 듣고 말았어. 두 사람이 이런 관계인줄은 알고 있었으나 단지 인지하는것과 실제로 접하는 건 굉장한 차이가 있지. 도저히 문 앞에 서 있을수가 없어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어. 수첩을 탁자 위에 던져놓고 그 위에 앉아 잠시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음. 

아자젤은 반나절이 지나고 나서도 아직 충격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방 앞에서 서성이고 만 있었어. 엄마아빠의 밤놀이 장면을 훔쳐본 아이가 된 기분이 바로 이것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한참을 머뭇거리다 수첩을 쥐고 기세좋게 방문을 열었어. 에릭은 고요하게 침대 위에 모로 누워있음. 인기척이 느껴질법도 한데 일어나질 않는걸 보니 꽤 깊이 잠든것 같아. 이불을 살짝 들쳐봤더니 온 몸에 키스마크가 난무하고 뒷처리도 제대로 안한것 처럼 보임.

뒷처리라도 하고 자라고 깨우려 흔들었지만 일어나지 않아. 그제서야 이게 잠든게 아니라 정신을 잃은거란걸 알게돼. 아니 이런 얼마나 굴렸길래 애가 정신을 잃고 나자빠져 있는거야; 쇼우의 정력에 뻘하게 감탄하며 뒷처리를 해주기 시작함. 자기가 왜 이런것까지 해줘야되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모양새가 안쓰러워 저도 모르게 하게 됐어. 이불을 걷고 수건으로 몸을 닦아준 다음 정액을 빼내는데 생각보다 많이 나와. 긁어내도 계속 나오는것에 식겁해서 육성으로 웩 소리가 나옴. 그곳은 얼마나 해댔는지 발갛게 부어있었어. 꼼곰하게 연고도 발라주고 옷을 입혀준 다음 이불을 덮어주자 조금은 편안해졌는지 에릭의 표정이 풀어졌어. 조금 힘이 들었는지 기운이 빠졌고 한숨이 나왔어. 쇼우와 에릭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잘은 모르지만, 에릭에 대한 집착이 좀 심하다고 생각했어. 가지고 온 수첩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밖으로 나갔음.

에릭이 그 수첩을 발견한건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였음. 웬 수첩 하나가 탁자 위에 있으니 당연히 뒤져봐야지. 그리고 그게 자기가 찰스의 둘째아이를 가졌을때 썼던 다이어리란걸 알게됐어. 수첩을 펼쳐드는데 손이 떨렸던건 비단 혼절햇다 막 깨어났기 때문은 아니었음. 이걸 누가 갖다놓은거지. 잃어버린줄 알았던 수첩이 눈 앞에 있으니 믿기지도 않았어. 누가 수없이 만지작 거렸는지 모서리부분은 많이 닳아있었음. 한장한장 넘길때마다 추웠던 러시아의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것만 같음. 수첩을 넘기며 그날의 기록들을 읽어보다 문득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적어놓았던 곳에서 손이 멈췄어. 독일 이름, 유태 이름, 영어 이름 등등. 클로제나 막시민, 제임스 같은 이름들을 보니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어. 그 애는 딸이었으니 이런 남자 이름을 지어줬으면 날 원망했을거야. 죽도록 고생을 하며 지키려 했던, 지키지 못했던 아이가 수첩 안에 생생하게 있어서 견딜수가 없었어. 그저 수첩을 가슴에 안은 채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음. 그리고 얼마 후 에릭은 자신이 쇼우의 두번째 아이를 임신했단 소리를 듣게 됨.

에릭은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그저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음. 무슨 감정을 가져야 할지 몰랐으니까. 마이클을 가졌을때처럼 만큼의 분노도 없었음. 그저 아 그렇구나 하는 것뿐. 만약 이 아이를 낳는다면 잘 키울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있었는데 두달정도 지났을때 유산을 하고 맘.

엠프렉이지만 남자에게 자궁이라 하기 민망하니ㅜ 아기집이 지난 임신 이후로 많이 안좋아졌기 때문이었는데-총도 맞았고-, 이것도 그냥 그렇구나 하는 생각뿐이었음. 심지어 아이에게 좀 미안한 감정까지 들었어.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온 에릭은 바뀌지 않은 미래를 보고 모든걸 체념했어.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쇼우에게 벗어나기 힘드니 현실을 수긍하자라고 스스로와 타협함.

그 이후로 한번 더 시도를 해봤지만 결과는 처참했지. 쇼우는 에릭의 몸상태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론 표가 안나도 속으론 자기와의 아이를 또 낳는것에 대해 굉장히 거부를 느끼고 있을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이렇게 계속 유산하고 있는거라 여김. 그래 이놈아 그럼 네가 그리 좋아하는 찰스의 아이도 떨어뜨리나 보자^^ 하고 그동안 먼지속에서 굴러다니다시피 한 배양액을 써서 강제로 임신시켜. 그랬더니 3개월이 지나도 애가 떨어질 생각을 안함. 쇼우는 말 그대로 빡이 쳤음.


올해 크리스마스도 학교에서 보내게 된 마이클은 우울해졌어. 앞으로 아자젤은 얼굴도 보지 않을거라고 다짐했어. 왜! 집에 가고싶어! 가고싶단말야! 마구 떼쓰고 싶었지만 더 이상 그랬다가는 선생님들에게 미운아이라는 인상을 줄까봐 꾹 참고 말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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