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가 정말 크게 다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데 토니가 공돌공돌 뚱땅뚱땅해서 뇌파를 읽어 대화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정말 눈을 깜빡이거나 웃거나 울거나 하는거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거. 감각은 살아있는대 몸이 마비된것처럼 손가락하나 꿈질대기도 힘든 상태. 토니는 처음에 스티브가 죽는줄 알고 한참을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스티브가 깨어나길 기다리다 막상 깨어났는데 저 상태인거. 그래도 일단 살아있단거에 감사해 하던 토니가 저런걸 만들어서 스티브의 관자놀이에 기계를 하나 부착해주고 시작버튼을 누르면 고요한 병실 안이서 스티브의 목소리만 들리는거지.
토니. 특수이어폰을 꽂은 토니에게 선명하게 들려오는 스티브의 목소리에 토니는 울면서 웃으면서. 이제야 네 목소리가 들려 스티브. 이제야. 제 아무리 천재인 토니도 수많는 시행착오를 거쳐 반년만에 만들어낸 기계는 제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해줬고 스티브는 웃으며 토니에게 고맙다고 말을 한다. 그 목소리는 살짝 떨렸는데 꼭 울먹이는것만 같았지. 드디어 의사소통을 할수있게 된 토니와 스티브는 이 전에 건강했을때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음. 하루종일 누워있을 스티브를 위해 침대를 개조해 투명패널을 비치해뒀어. 토니는 한시간에 한번씩 스티브에게 연결해 화상통화를 했음. 이것저것 안부를 묻기도 하고 재밌는 영상이나 스티브가 좋아할만한것들을 스크랩해서 전송했지.
움직일수 없어도 심심할 틈이 없었어. 오히려 움직이지 못함으로 생긴 여유라고 해야하나. 쉴드의 구속에서 벗어난 해방감이라 해야하나. 굉장히 평화로웠고,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것들을 볼 수 있었고,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갈 수 있었음. 비록 패널건너편의 세계였지만. 이러한 삶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있고 평화로운 이 시기가 너무 좋았어. 하지만 자신이 캡틴의 삶을 버렸대도 여전히 토니는 아이언맨이었으므로 완벽한 행복만 있는건 아닐거임. 스티브 본인의 몸 상태는 그래도 꾸준히 좋아지고 있었음. 그때 죽었어야 할 사람을 살려내 억지로 목숨을 연장시키고 있는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의사는 스티브가 반년도 못 살 거라 했지만. 스티브는 보란듯이 1년을 넘게 버티고 있는거지.
하지만 버티고있는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 어느 순간부터 토니는 스티브의 반응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고 있단걸 깨달았어. 잠을 자는 시간과 집중치료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있었음. 두 사람 다 끝이 왔음을 알게 되겠지. 스티브는 가기 전에 토니에게 머리에 붙은 기계를 떼어달라고 부탁했어. 그리고 그 조그만 기계가 떨어지자 스티브는 입을 열어 직접 토니를 부름. 2년가까이 움직이지 않던 성대에선 거친 소리만이 나왔지만 온 힘을 다 해 마지막 말을 전하겠지.
토니. 그동안 고마웠고 미안하네. I lov.. 까지만 말을 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아버리겠지. 뒷말은 다 듣지 않아도 알지만 토니는 끝내 그 말을 다 듣지 못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가버린 사람의 손만 만지작대고 있을거. 장례식이 끝날때까지 토니는 매우 덤덤했음. 기약된 죽음이라 눈물도 안나오고 절절하지도 않는. 다만 아직 아프리카 대륙의 신비함을 다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스티브가 떠난 침대에 누워 자기가 전송해놓은 영상들을 보며 아 이건 보고 갔으면 좋았을텐데. 이거 당신이 진짜 좋아할거였는데. 따위의 말들을 중얼거리는데 세상 어디에도 없을 고화질패널이 점차 흐려지더니 볼에 물기가 떨어지는거지. 이제야 겨우 눈물한방울을 흘린 토니는 다음 출격에서 죽고 말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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