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이상하리만큼 붕 뜨는듯한 느낌에 눈을 떴어. 눈을 뜨자 초록색의 커다란 가슴팍이 보였고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듯한 괴성이 귓가를 때렸어. 스티브는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움직일수가 없었는데 그 초록색의 커다란 덩치가 자신의 양 팔을 꽉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그 덩치가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떠올리기 싫었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초록색의 덩치는 힘 있게 아래를 쳐올리는 중이었어. 아래에서는 아직도 더 커질수가 있는건지 점점 더 부풀고 있는 헐크의 성////기가 가득 채우고 있었지. 채운다기보다는 뚫고 들어간 수준이 맞다고 해야할지도 모르겠어. 이미 아래쪽엔 감각이 없어야 할텐데 헐크가 치고 들어올때마다 불에 달군 꼬챙이로 아래를 가득 헤집고 있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어. 스티브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살려달라 애원하다 눈 앞이 까맣게 암전했어. 사위가 까매지자 헐크의 괴성이 멀어져갔고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흔드는게 느껴졌어. 누가 날 깨우고 있는것일까. 헐크일까. 아니면 변신이 풀린 배너박사일까. 스티브. 스티비. 조용조용 부르는 목소리에 맞춰 살며시 눈을 떴더니 파란 아크로원자의 불빛이 보였어. 


"정신이 들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경직되어있는 눈을 애써 들어올렸더니 땀으로 젖은 토니가 있었어. 스티브는 버릇처럼 토니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토니는 으스러질듯 그의 몸을 끌어안아줬어. 악몽을 꾸는 날이면 항상 토니에게 의지하고 달라붙었어. 꿈이 지나치게 생생한 것도 한 몫 했음. 토니에게 안겨 씻으러 들어갔다가 다시 꿈속에서 당했던것이 생각났어. 아래를 가르고 들어오는 그 크고 두꺼운 느낌. 바로 속을 게워냈는데 토사물은 전부 토니의 가슴팍에 떨어졌어. 토니는 그 날벼락을 맞고도 침착하게 토시물이 묻은 셔츠를 벗어 던져두고 스티브의 몸을 닦아주는데만 집중했음. 스티브는 따뜻한 물 때문에 몽롱해지는 정신속에서 토니를 바라봤어. 발작하는 몸을 진정시키려 하다 여기저기 얻어맞았는지 금새 파랗게 멍이 들어가고 있었어. 손을 뻗어 멍자국을 가만히 쓸었더니 토니가 그 손을 마주 잡아주며 웃었어. 


그 날로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악몽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어. 사고가 난 직 후 바로 아스가르드로 돌아갔던 토르는 한달 후에 아스가르드의 치료석 조각을 가져왔어. 그 덕에 평생 휠체어 신세는 면했지만 상처만 나았다 뿐이지 망가진 신체의 기능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음. 끝내 너는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할거란 소리를 들은 스티브는 조용히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어. 원망하며 울지도 않고 체념하며 웃지도 않은채 고요히 창 밖만 바라보는 스티브에 토니가 대신 아파하며 울어줬지. 그거면 됐어. 스티브는 자기 대신 울어주는 토니를 끌어안은 채 등을 토닥였어. 


그런데 그 날 이후 스티브의 악몽은 점점 실체화가 되었고 반년이 지난 지금은 그날 겪었던 고통까지 생생해졌어. 더 이상 꾸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꿈은 생생해져만 가는게 꼭 벌을 받는것만 같아. 토니가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걸 깨달았을때 막연히 들었던 생각은 뱃속의 아기를 지워야겠단 거였어. 하지만 뜻하지 않게 그런 일을 당하고 평생 임신할 수 없다는 말을 듣자 그냥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음.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토니 몰래 초음파 사진을 찢는 거였어. 나를 많이 원망하나봐. 스티브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수 없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토니의 품에서 다시 잠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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