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겸
겸을 처음 본 사람은 모두가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이 있었음. 오 겸아(해리) 너는 네 아버지(어머니)의 눈을 닮았구나. 쌍커풀이 예쁘게 지고 눈이 동그란게 무휼을 정말 많이 닮아있어. 겸은 무휼의 눈에 -무예를 익히는 사람치고는- 하얀 얼굴을 지녔고 풍채가 조금 얇상했음. 그 모습을 보면 다들 무휼이 젊었을 때 저런 모습이었겠거늘 하고 생각했음.
겸이 열 살이 되었을때, 술에 취해 지나가던 양반이 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저놈은 사내의 몸에서 나온 놈이고 아주 부정한 놈이라고 소리를 질렀던 적이 있었음. 곧 나으리 이러시면 안 된다며 종놈들이 모셔갔고, 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들어 곧 집으로 돌아가 외조부인 호판에게 물었어. 방금 지나가던 어른께서 저더러 사내의 몸에서 나온 부정한 놈이라 칭했다고. 저의 어머니는 외조부이신 호판대감의 따님이시지 않냐면서. 맞다. 넌 내 딸과 무휼 사이의 아들이다. 사내에게서 나온 놈이라는것은 무슨 뜻입니까. 호판대감은 지긋이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지. 그리고는 바른대로 알려줬어. 네 아버지가 이국으로 왜 끌려갔었는지는 알고 있겠지. 넌 네 아비가 이국으로 끌려갔을 때 직접 배에 배어 온 씨다. 네게 있어 무휼은 어미이자 아비이고 네가 비록 나의 딸과는 하등 관계가 없지만 내가 무휼을 아들로 삼은 이상 너는 나의 손자이니라. 열 살인 겸은 이해하기 힘들었음. 충격적인 출생비화를 들었음에도 고개만 갸웃 하고 말았음. 원래 겸의 성격은 소쿨한 편이었고. 훗날 좀 더 자라고 난 후에 호판대감이 한 말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지. 깨닫고 나서도 별 감흥이 없었음. 남자의 몸에서 나왔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반응일 뿐. 어쨌던지간에 내 아버지가 무휼이라는것과, 그 무휼은 조선 제일검이었고 기개있는 무관이었으며 자기가 제일로 존경하는 분임은 변함이 없음.
겸이 워낙 어릴때에 무휼이 죽었기 때문에 겸은 자기 아빠에 대해서 기억나는게 거의 없었음. 그래도 기억나는것이 있다면 안아달라고 다가가면 얼굴 한 가득 미소를 짓고 누운채로 두팔을 벌려주던 모습뿐이었음. 그 모습 하나로도 저는 아버지에게 정말 사랑을 받았더란걸 알게 됨. 겸은 부모가 없지만 누구에게도 주눅들지 않았던 이유가 외조부와 외조모에게도 사랑을 아주 듬뿍 받으며 자랐기 때문임. 처음엔 겸이를 거부했던 외조모도 차츰 아이가 이쁜짓을 많이 하자 마음이 가서 예뻐하게 되었고. 표정은 뚱 하지만 할머니에게 홍시하나를 더 얹어준다던가, 뽀뽀를 한다던가.. 하는 예쁜짓. 성격은 소쿨하지만 모나지 않아 따르는 이가 많았음.
17세에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장원을 탄 자들의 신상에 대한 보고를 듣던 전하께선 겸이 급제를 했다는 것에 아주 놀라셨지. 무휼의 아들이 그새 자라 무과에 시험을 쳤고, 장원으로 붙었다는 것에 눈시울이 붉어지셨음. 제 아비를 닮아 무예가 뛰어나다는 소문이 자자했어. 그러다 겸이 적어 제출한 제 이름자와 3대조의 이름을 보며 잠깐 놀라셨음. 겸의 할아버지, 즉 무휼의 아버지 이름이 너무 익숙해.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대왕이 직접 처리하였던 고려 무신 중 한 이름이었음. 전하께선 그제서야 무휼이 그의 아들인걸 알았어. 무휼은 어쩌자고 제 아버지의 원수와 함께 하였던 것인가. 어쩌자고 원수와 원수의 아들에게 그리 충성을 하였던 것인가. 너무나도 궁금했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답을 할 수가 없지. 무휼이 그간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을지를 생각하니까 너무 가슴이 아파와서 잠시 눈물지으셨어. 여튼 전하께서는 겸을 불러 독대를 하셨음. 말쑥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젊은 시절의 무휼을 많이 닮았어.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에 의아함을 담고 있는 겸은 고개를 갸웃했지. 전하. 어찌 그리 보십니까? 겸의 질문에 전하께서는 나직하고 다정스레 겸아 하고 불러주셨고, 겸은 놀라 납작 엎드려 대답하였음. 어찌 전하께서 소신을 그리 부르시옵니까! 네 이름자를 누가 지어준 줄 아느냐? 과인이 지어준 것이다. 겸은 처음 듣는 소리에 무엄한 줄 모르고 고개를 번쩍 들어 용안을 빤히 쳐다봤음. 겸아. 너는 네가 너무나도 힘들게 태어난 아이란 것을 아느냐? 과인과 무휼은 네가 무관만은 되지 않기를 원하였거늘 어찌 무관이 되었더란 말이더냐. 전하께서는 앞에 놓여진 책상을 물리시고 꿇어 엎드린 겸을 일으켜 앉히고는 얼굴이며 몸을 쓰다듬어주셨는데, 그 손길이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 주는 것 같아 겸은 문득 울컥해졌음.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이겠지. 겸아. 네 이름과 몸은 귀한 것이다. 앞으로 어딜 가서든지 그 이름 욕되이 하지 말며 함부로 다치면 아니 되느니라. 이것은 어명이다. 그리 명을 내리시는 전하의 옥음과 눈빛이 너무도 부드럽고 따스하였음. 겸은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이리 해 주셨을거라 생각하며 쓰다듬어주시는 손길에 몸을 맡겼음.
겸은 무과에 급제한 다음 해에 혼인을 하였음. 사내에게서 나온 이라 해서 거부하는 여인도 있었고, 그 때문에 어디가 모자를까 싶어 거부하던 집안도 있었음. 그러던 중 현명하고 조숙한 한 여인이 겸을 택했음. 집안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아무런 편견 없이 자신을 받아주는 그 여인이 좋았어. 겸은 부인과의 사이에서 2남1녀를 봤고, 막내가 태어나던 해에 전하께서 승하하셨음. 이윽고 세자가 보위에 오르게 되었고, 세자의 호위를 맡던 겸은 내금위에서 품계가 한단계 올라갔음. 그리고는 곧 내금위장이 되었는데 마흔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내금위장이 된 것에 대해 역시 조겸이다, 무휼의 아들이다라는 이야기가 돌게 되었고,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닮아가는 풍모에 무예도 출중해서 은연중에 조선제일검이라는 별호가 다시 쓰이게 되었고 무사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자가 됨.
겸이 푸른색 내금위장 복을 입고 궁 내를 돌아다니면 무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무휼이 귀신이 되어 온 줄 알고 놀란 다는 것이 후문.
'뿌리깊은 나무:육룡이 나르샤 > 외국으로 끌려간 무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국으로 끌려간 무휼 외전 4 배드엔딩. (0) | 2013.07.21 |
---|---|
외국으로 끌려간 무휼 외전 2 (0) | 2013.07.21 |
외국으로 끌려간 무휼 외전 1 (0) | 2013.07.21 |
외국으로 끌려간 무휼 17 END (0) | 2013.07.21 |
외국으로 끌려간 무휼 16 (0) | 2013.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