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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5방시인기] Beautiful thing /전쟁연작 1 2021.02.01

*약 2008년 즈음 쓴거라 변기가 포함되어 있음. 심지어 유수/호수...

 

 

 

 순식간의 일이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한가롭게 도로를 달리던 벤이 튕겨져나갈만큼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자리에서 메니저형이 죽었고, 우리는 갈피를 잃었다. 광란의 장소로 변해버린 도로를 벗어나, 총탄이 빗발치는 터를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창민이는 사라져 있었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군부대에 편입되어 있었다.

 전쟁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전쟁이라고 했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쳐들어왔는지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전쟁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전투를 겪었다. 조금 전까지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이 핏덩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람들의 아우성. 그 누가 말했던,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그런 장소.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어줄 새도 없이 우리는 우리 살기에 급급했다.

 

 적을 없애기 위해 앞으로 앞으로. 죽음을 넘어선 자들은 적을에게 죽음을. 그러기를 반년.

반년간 우리는 우리 가족의 생사도 알 수 없었다. 가끔씩 폐허가 된 피시방에 몰래 들어가보기도 했지만 인터넷은 모두 끊겨있었다. 이런저런 폭발에 의한 충격으로 케이블들이 맛이 간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 당황스러웠던 마음이 절망으로 바뀌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특히 재중이가 그랬다.

 

“뭐야이거..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야?”

“.....”

“왜? 왜 전쟁이야? 북한에서 밀고 내려오기라도 한거야?”

“몰라.”

“몰라 말고 다른 말 좀 해봐 윤호야.. 나 진짜 미칠거같애.”

 

 그런 반면 준수나 유천이는 조용했다. 속으로 곱씹는 것인지, 체념을 한 것인지 손만 맞잡은 채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특히 가족의 생사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유천이는 행군을 하다 공중전화 박스를 보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곤 했다.

 

“부모님이 걱정 많이 하실텐데.. 특히 유환이 어쩌지? 만약에 나 죽..”

“재수없는 소리 하지마.”

“재중이형..”

“재수없는 소리좀 하지 말라고 아 씨발! 이놈이나 저놈이나 왜 다 죽는다는 소리만 해?!”

 

 전쟁이 난 이후에 신경이 예민해진 재중이는 언제나처럼 화를 냈고, 유천이는 그런 재중이를 보며 뭔가 더 말하려는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이내 다물었다. 앞에서 씩씩대는 재중이 몰래 유천이에게 다가갔다.

 

“네가 이해해 유천아. 재중이가 나쁜 의도로 그러는건 아니잖아.”

“알아. 알지..”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한참을 말없이 걷던 유천이가 진심 섞인 농을 한마디 내뱉었다.

 

“형. 나 영주권 괜히 포기한 거 같애.”

 

 그 농담이 알 수 없이 애처롭게 들렸던 것은, 나도 대충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느낌이 왔던 것 같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천이는, 좀 속된 말로는 골로 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게 되었다. 행군 도중 받은 공습으로 희생된 제일 첫 타차가 유천이었으니까. 적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인해 그 애처로운 농담이 유언이 된 셈이었다. 비명한번 못 지르고 가버린 유천이를 끌고 건물 뒤로 숨었다. 끌고 온 자리를 따라 유천이가 쏟아내는 시커먼 피가 덧씌워졌고, 이미 준수는 숨도 못 쉴 만큼 울고 있었다.

 

“유천아! 유천아아!”

 

 비명섞인 울음을 내지르는 준수를 바라보기만 했다. 식어가는 유천이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당황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죽을 수 있다는 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지도 않은 상태였으니까. 살려면 다같이 살고 죽으려면 다같이 죽자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누구 하나가 먼저 가버릴 줄이야. 이러고 있으면 죽을게 뻔한 상황인데도 머릿속이 너무나 멍해져서 울 수도, 손 하나 까딱할 수도 없었다.

 

“이 병신아! 뭐하고 있어! 죽고 싶어? 빨리 쏴!”

 

재중이는 내 뒷통수를 과격하게 때리면서 날 마구 발로 찼다. ‘쏴’라는 말에 퍼뜩 정신이 들어 총을 들었다. 내가 총을 들자 내 눈 앞에서 날 조준하고 있던 적군 하나가 잠시 움찔하는 게 보여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터진 피가 내 얼굴을 적셨다. 내 얼굴을 적신 피의 온기에 무의식적으로 유천이를 바라보았다. 유천이의 입술은 아직 붉었다.

 적의 공세가 예상보다 강해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준수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숨도 못쉬면서도 업은 유천이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가 하사님한테 얻어맞았다. 준수에게서 억지로 유천이를 떼놓으려 하자 거의 발작을 하며 울기에 또 한 대 얻어맞았다. 뺨을 맞고 주춤하는 사이 내가 준수의 손을 잡고 달렸다. 내 손을 잡고 안가겠다고 매달리는 걸 재중이가 준수의 다른 한 손을 잡아서 둘이 같이 끌었다.

 

“형! 형! 싫어! 아직 식지도 않았어!”

“그만 좀! 준수야!”

“아직 따뜻해..! 안죽었을지도 몰라 혀엉!”

“김준수!”

“자, 잠깐만! 형! 잠깐만! 그럼 묻어주기라도 할게..! 묻어는 줘야 될 거 아냐!”

“죽고 싶어 환장했냐?! 닥치고 뛰어!”

“형은 인정머리도 없어?!”

“씨발놈아!!”

 

 참다못한 재중이가 결국 준수에게 손을 댔다.

 

“가서 묻어 개놈아! 그렇게 죽고 싶으면 가서 묻어! 저기 봐! 다 적이잖아! 이런 상황에 뭘 하겠다는 거야?! 유천이 묻다가 너 죽으면 우리가 너 묻어줘?! 너 묻다가 나 죽으면 윤호가 묻어주랴?! 나 묻다가 윤호 죽으면 윤호는 누가 묻어!”

 

 결국 준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창민이를 뺀 넷 중에서 우리 셋만 그 자리에서 살아나왔다. 그날 저녁 하사님은 준수에게 유천이의 군번표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렇게들 정신이 없었나? 아무도 안 가져 가길래 내가 가져왔다. 이걸 떼어 와야 생사확인이 되지. 나중에 가족들한테 전해주기도 해야 하고.”

“.....”

“일단 자네가 제일 많이 울었으니.. 갖고 있게.”

 

 준수는 하사님이 말을 마치자마자 쓰러졌다. 깜짝 놀라 의무반으로 업고 갔더니 쇼크로 인한 혼절이라며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내쫓다시피 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재중이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 그 맨날 성질부리는 눈 뾰족한 애 말야? 저기 저 끝으로 가봐. 거기 있던데.”

 

 물어물어 겨우 찾은 재중이는 커다란 나무 기둥에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내 기척을 느꼈음에도 무릎사이에 박은 고개는 들지 않았다.

 

“재중아. 여기서 뭐해? 주, 준수.. 쓰러졌어.”

“.....”

“재중아..”

 

 내 부름에도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나도 그만 체념하기로 하고 그 옆에 앉아 다리를 모아 안았다. 가을이라 작열하는 풀벌레소리만 우리 둘 사이에 울려 퍼졌다.

 긴 침묵 속에서 나는 머리가 아팠다. 창민이가 사라지고, 갑작스레 유천이가 죽고, 준수가 쓰러지고. 남들 죽는 것만 봐 왔지 내 동료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결국 현실로 일어나 내 마음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있었다. 울고 싶어도 차마 울 수가 없었다. 나보다는 재중이가, 재중이보다는 준수가 더 슬플 거야. 내가 흘리고픈 눈물은 이 두 사람이 다 울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는..”

 

 한참의 침묵 뒤에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렇지도 않냐?”

“어?”

“아무렇지도 않냐고. 유천이 죽었잖아.”

“..어?”

“‘어’가 아니잖아.. 씨..”

 

 욕지거리를 하며 고개를 들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쓰윽 닦았다. 차마 다 닦지 못한 눈물이 반짝였다. 있는 인상 없는 인상 다 쓰며 날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런 재중이를 멀뚱히 쳐다보자 기가 막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친구도 아냐.. 울지도 않아, 이거. 일로 만난 사이라고는 해도 정도 없냐?”

“..어?”

“이 새끼가 왜 아까부터 ‘어’만 해대? 그래, 할 말 없지? 이런 걸 믿고 따랐던 나도 참 병신이지..”

 

 내가 울지 않았던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나는 단지

 

“아니 나는.. 그냥.. 울면 안될거 같아서..”

“뭐?”

“......너희가.. 다 울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나는.. 울면 좀..”

“야!!”

 

 버럭 소리 지르며 일어서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리더냐? 리더라서? 지금 이 상황에서 리더 따지냐? 왜 살아 이 바보야! 상황 파악 좀 하란말야..!”

“재, 재중아...”

“울어도 돼. 너 잘 울잖아? 좀 울어라.. 참지 마. 참지 마. 이건 방송이 아냐. 현실이야, 윤호야. 진짜로 유천이 죽었어...”

“어...”

“진짜야. 진짜라고. 유천이 진짜 죽었다니까..”

“...어.....”

“......진짜.. 준수 말대로 묻어주고 오기라도 할껄..”

 

 울 생각도 못했다. 울어도 된다고 생각도 못했다. 나까지 울면 힘들어할까봐. 아니면 그저 유천이가 죽은걸 머릿속에서 못 받아들인 건지도 모르겠다. 재중이가 날 끌어안자 그제서야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렀다.

 

“으흑... 히윽....”

“잘했어. 울어.”

“우.. 흐윽.....”

 

그렇게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앓고 난 후 준수는 말이 없어졌다. 그나마 생글생글 웃던 모습까지 사라져버렸다. 재중이는 준수의 얼굴을 때린 게 미안해서였는지 연신 사과했지만 준수가 반응이 없자 둘 사이는 차차 어색해져갔다. 둘 사이를 어떻게든 다시 예전처럼 돌려보려고 연신 애썼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시큰둥한 준수와 재중이. 그 사이에서 나도 점점 어색해짐을 느꼈다. 어느덧 우리는 말도 한마디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고, 그 상황은 세 달간 지속되었다.

 어째서인지 재중이를 보는 것 보다 준수를 보는 것이 더 괴로웠다. 숨을 쉬는 것도 괴롭고, 밥을 씹어 삼켜도 목이 아파 하루하루가 괴로웠던 긴 시간이었다.

 

 세달 후, 그 상황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먼저 다가온 건 재중이었다. 세달 만에 다가온 재중이는 잔뜩 골이 나서는 나에게 틱틱거렸다.

 

“어쩜 그렇게 말 한마디도 안 걸어? 와 진짜 정윤호 진짜 실망이다.”

“어?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진짜 매번 작전 때마다 너네 죽을까봐 얼마나 안절부절 못했는데..”

 

 그동안 밀린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서로를 관찰하고 있었단 사실을 알았다. 밥은 잘 먹는지, 다치진 않았는지, 행여 죽진 않았는지.. 재중이는 며칠 전을 회상하면서 그 일만 생각해면 몸에 치가 떨리는 듯 했다.

 

“그때 정말 온몸의 피가 다 마르는 줄 알았어. 분명 그 자리에 네가 있었는데, 그 수류탄이 그쪽으로 가서 팍 터진 후에 보니까 네가 없는 거야. 나는 아 이녀석 터졌나, 아냐 그럴 리가 하면서 막 두리번거리는데 너 어느 새 저~쪽으로 가서는 완전 빙구표정 짓고있더라. 그 표정보고 갑자기 웃겨서 막 웃었다가 나 얻어터졌다고.”

“빙구표정은 무슨..”

“진짜 딱 빙구였어. 죽을랑말랑하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너 보고 웃은 거 보면.”

“웃기시네. 지는?”

“내가 뭘?”

“흥.”

 

 한참을 웃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미친 듯이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재중이가 말했다.

 

“...그런데 준수는?”

“..준수?”

“..살아있지? 요즘 안 보인다.”

“..살아있지. 응. 살아있어..”

 

 준수는 유천이에 대한 복수라도 하려는 것인지 작전 중에는 미친사람마냥 뛰어다녔고, 작전이 끝나면 항상 구석진 곳으로 가 유천이의 군번표만 쥐고서는 멍하게 앉아 있었다. 괜스레 이리저리 날뛰느라 몸이 성할 때가 없어보였다. 이쪽 붕대가 풀렸나 싶으면 저쪽 붕대가 생겼고, 얼굴에는 반창고가 떠날 날이 없었다. 보기 안쓰러워 말이라도 붙여볼까 싶어도 가까이 오지 말라는 포스가 너무 강해 선뜻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녀석..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물음에 재중이도 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준수를 방치한 상태로 또다시 전투를 맞게 되었다. 주한미군부대와 함께였다. 그리고 바로 옆에 준수도 함께였다. 우리는 갑자기 어색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그 어색함은 전투에 집중 한 후 바로 사라졌다.

 잠깐 집중을 푼 사이 옆쪽에서 미군과 카투사가 열심히 작전을 교환하는 게 들렸다. 얘기만 들었지 카투사 녀석들의 유창한 영어를 실제로 들어보니 은근히 배알이 꼴렸다.

 

“흥, 그래 영어 잘해서 좋겠다.”

“그래도 유천이가 더 잘한다. 한국에 오래 있어서 좀 까먹긴 했지만 그래도! 유천이 앞에서는 껌인 것들이..”

 

 일부러 유천이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하며 준수의 말을 의도했지만 애석하게도 녀석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날의 전투는 나에게 크고 작은 상처들과 왼쪽 귀의 청력을 앗아가 버린 채 끝나버렸다. 적이 날린 수류탄은 정확히 내 옆 동료에게 떨어졌고, 동료의 몸이 터지면서 그 파편과 피가 고스란히 나에게 쏟아졌다. 엄청난 통증과 폭탄이 터진 압력 덕에 양 귀가 꽉 막혀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재중이는 내가 진짜로 죽은 줄만 알았다고 했다. 먼지가 걷히고 내 모습이 드러났는데 온 몸이 피범벅이 된 채 꼼짝도 없이 누워있어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고 했다. 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 대답할리 만무했다.

 

“개같은놈아! 사람 놀래키고 있어!”

 

 한참 뒤에 먹먹해진 게 사라지고 재중이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다고 어색한 미소를 보여주면서 돌아오는 청력을 느끼고 있었는데, 왼쪽 귀가 아무것도 듣질 못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귀가 이상해서 귀를 파보다 준수와 눈이 마주쳤다. 준수는 아무 말 없이 몸을 틀어버렸다.

 저녁까지 이어진 길고 지루한 전투에 모두 지쳐있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각자 늘어져 수근수근 잡담들이 오갔다. 나는 의무실에 누워 바깥의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낄낄거리는 소리와, 커다란 말소리들이 오갔다. 잠깐 눈을 감는데, 순간 준수가 떠올랐다. 피투성이가 된 날 바라보던 준수의 얼굴.. 또 충격받은건 아닐런지 걱정하고 있는데, 잠깐 밖에 나갔던 재중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돌아왔다.

 

“준수 큰일났다.. 애가 상태가 더 안 좋아졌어.”

“뭐?”

“지금 준수 보고 오는 길이거든. 근데 아 진짜.. 미치겠다.”

“나 안죽었는데.. 괜찮은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우리 둘은 준수에 대해서 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렇다 할 대책도 나오질 않았다. 그저 서로를 마주보며 한숨만 내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바깥의 말소리가 줄어들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 갑자기 왜 이렇게 조용해지지?”

“응?”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니, 바깥의 말소리가 볼륨을 줄이는 것처럼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있었다.

“....준수..다..”

 

 언젠가 방송에서 불렀던 Lately. 방송이 끝나고 무던히도 칭찬을 해줬더랬다. 좋아, 좋아, 준수야. 굉장해. 네 노래 정말 굉장해.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나는 항상 준수의 노래를 칭찬했지만, 그날은 정말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감동을 받아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내내 칭찬을 했었다.

 그랬던 노래. 아픔도 잊은 채 나도 모르게 뛰쳐나갔다. 준수는 평소처럼 유천이의 군번표를 만지작거리면서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하나 다른 점은 울고 있었다는 것.

 

"I vaguely heard you whisper.. 흑.. someone's name.. But when I ask you of.. 흑.. 흑.."

 

 중간중간 울음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조용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부대 내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준수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준수의 마음이 그대로 실린 그 애절한 노랫소리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그날처럼, 나는 또 가슴이 먹먹해졌다.

 노래가 끝나고, 준수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내게 돌렸다.

 

“혀..엉... 윤호혀엉... 죽지마.. 죽지마라.. 영웅이형도 죽지 마.. 제발 내 눈 앞에서 아무도 죽지마..”

 

 군번표를 놓치지 않으려 쥔 주먹에 더 힘을 주면서 울어댔다. 몸을 질질 끌고 와 내 바짓자락을 잡고 울어댔다.

계속 울어댔다. 준수의 눈에서 그렇게 또 눈물이 흘렀다. 나는 병신이다.

 

 준수는 여전히 말은 별로 없었다. 그 일로 우리가 언제든지 죽을 수 있을 거란 불안함이 가중된 것인지, 그동안 어떻게 따로 지낼 수 있었는지가 궁금해질 정도로 시종일관 눈을 굴리며 우리를 졸졸 좆았다.

전투는 규칙적이지 않았다. 몇날며칠 계속 이어질 때도 있었고 몇날며칠 없을 때도 있었다. 전투가 없으면 으레 사람들은 더 불안해했다. 언제 어디서 기습을 받을지 모르는 이유에서였다. 같은 패턴만이 반복되는 가운데에도 시간은 흘러, 어느덧 1년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준수는 노래만을 불렀다. 시끄럽다며 야단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준수가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했다. 우리도 좋았다. 가끔 먹을 게 생기면 노래에 대한 보답이라며 준수에게 주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네 것은 나의 것, 나의 것은 나의 것이라는 모토를 갖고 있던 우리답게 준수에게 들어오는 간식은 그 자리에서 삼등분되었다.

우리가 맛있게 감자를 먹고 있는데, 어려보이는 남자애 하나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 죄송합니다.”

 

 다짜고짜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한 그 아이는 군복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 우리에게 들이밀었다. 서로 벙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슬몃 고개를 들어 우리의 눈치를 살피고는 입술을 삐죽였다.

 

“어 저기.. 처음엔 누군지 몰랐거든요. 동방신기 맞죠? 저 고의는 아니고.. 시아준수 형 노래 부른거 처음부터 엠피에 다 녹음했거든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저작권 문제도 걸려있고, 본인은 모르는데 몰래 녹음하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가지시라구요.”

 

 그 말에 우리는 서로를 마주봤다. 재중이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작권? 웬?”

“저작권.. 상관없어요?”

“우리가 노래지어서 부르는 것도 아닌데 웬 저작권? 너 당황스럽다.”

“그, 그럼.. 그래도 몰래 녹음 한건..”

“괜찮아. 뭐 맨날 도촬당하고 캠 찍히고 별짓 다 당해봐서 익숙해. 그치 준수야?”

 

 재중이는 격하게 준수의 옆구리를 치면서 대답을 강요했다. 내키진 않는 듯 했지만 강요에 못 이겨 고개를 두세 번 까딱거렸다. 재중이는 활짝 웃으며 엠피가 들린 아이의 손을 꽉 쥐어주었다.

 

“갖고있어. 나중에 큰 돈이 될껄? 전장에 울려 퍼진 한 가수의 노래 모음집 해서. 특히 우리가 없다면 말야. 아니다, 기왕이면 나도 노래불러줄게. 두 가수의 노래 모음집 해라. 크크큭.”

“지랄한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농담도 갖가지 해라 아주.”

 

 내 핀잔에 꿍시렁대던 재중이는 나에게서 몸을 홱 돌려 -정작 화재의 중심이 되었던 준수는 놔두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거 어떻게 지금도 되냐? 어떻게 충전해서 갖고 다니는 거야? 신기하다.”

“아 이거..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야매로 알아낸 방법인데요..”

 

 즐거워보이는 저쪽은 놔두고 준수와 나는 꾸물거리며 감자를 먹었다. 그러고 보면 부대 내에서 우리가 가수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를 알아보고 딸이 팬이라며 싸인을 받아가시던 아버님들과 몇몇 사람들을 빼면, 심지어 또래들이라 하더라도 우릴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하는 말들이 ‘너 가수였냐?’. 그럴때마다 새삼 우리의 팬 층이 참 편협했다는 걸 느꼈다. 깨작깨작 감자를 먹는 준수가 왠지 모르게 측은해보여 예전처럼 머리를 부산스럽게 부벼줬다.

 

“좀 팍팍 먹어봐. 깨작거리지 말고.”

“.....”

“있잖아, 우리 나중에 다시 무대에 서게 되면말야. 그땐 좀 대중성 있게 나가보자. 사람들이 하나도 모르니까 속상하당.”

 

 준수가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눈으로 빤히 쳐다보자 내심 당황했다.

 

“.....”

“아니 농담인데.. 아니아니 진심인데.. 아니 아닌데..”

 

 당황해 말을 더듬는 나를, 몇 번 눈을 꿈뻑이며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감자를 한입 물었다.

 

“...형.”

“어, 어, 응?”

“다시 선다 해도 우린 이제 다섯이 아냐. 알지?”

“.....아, 응.”

“난 다섯 아니면 싫어.”

“...응.”

 

 병신같이, 나는 그냥 응 이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불발된 수류탄 하나에 우리는 이제 다섯도, 넷도 아닌 셋이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던지려 했던, 핀을 뽑은 수류탄이 우리 참호 쪽으로 떨어졌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희뿌연 연기와 메케한 화약내, 피내음. 잠깐 아찔해진 정신을 추스르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 남은 건 날 제외한 셋 뿐이었다. 그것도 우리 애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 이리저리 튀어버린 피를 보자 정신이 빠져나갈 것만 같아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가팔라지는 숨을 고른 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리저리 터진 시체들과, 그나마 제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시체들 가운데에 널부러져있는 재중이와 준수가 보였다. 시야가 하얘지면서 그 두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둘을 들쳐 업고, 안고 빈 건물을 찾아 달렸다. 죽은 건지 눈을 감고 꼼짝도 안하는 재중이의 가슴에 귀를 대 보았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준수는 입가에 피를 진득이 흘리면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 하다 재중이가 움찔거리자 무의식적으로 내 군복을 찢어 상처들을 동여맸다. 어디를 어떻게 매고 있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혀, 형. 형.”

 

 준수의 다급한 부름에 재중이의 상처를 묶다 말았다. 파들파들 떨면서 형, 형, 나지막하게도 불러댔다. 피가 꿀렁거리는 가슴께를 움켜잡으며 준수를 향해 뻗은 내 손을 꽉 쥐었다.

 

“피, 피.. 준수야 이거 어쩌지? 피..”

“형.. 아퍼.. 아퍼..”

“응?”

“아퍼..”

“조, 조금만 참아봐. 응?”

“하아..”

 

 준수가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감자 온몸의 피가 바닥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준, 준, 준수, 수야.”

“형..”

“으, 응?”

“유천이도.. 많이 아팠겠다..”

 

 날 바라보면서 눈썹이 팔자로 휘어지게 씨익 웃었다. 1년 만에 웃었다.. 멋모르고 나도 따라 웃어버렸다.

 

“어? 뭐라고 준수야?”

 

 으항항 하며 웃을 것 같던 준수의 표정은 서서히 풀어졌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준수야?”

 

 악력이 풀려 바닥에 떨어지는 손을 다시 주워들어 손아귀에 꽉 쥐었다. 한손에 들어오는 작은 손. 주물주물 주물러봤다.

준수가 잠들었을 때마다 몰래 주물러봤던 느낌과 확연이 틀렸다.

 

“윽... 우.. 윽...”

 

 아 죽었구나. 자는 게 아니구나. 죽었구나 준수야.

 

“형, 혀엉..!! 혀엉!”

 

 선임 위생병아저씨가 돌아가시고 새로 들어온, 팬이라지만 아직 이름도 못 외운 위생병 형을 불렀다. 곧 무너질 것 같은 건물 안에서 의식없는 재중이와 죽어버린 준수 사이에서 무릎 꿇고 앉아 제발 좀 와달라고 서럽게 울었다. 건물 밖까지 내 울음이 들릴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제발 좀 와달라고 울었다. 울다 잠시 일어나 혹시나 해서 밖을 보는데 깨진 건물 틈 사이로 위생병 형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혀엉! 형!”

 

 형은 내 외침을 못 들은 듯 했다.

 

“형! 가지마요! 잠깐만!”

 

 지나갈세라 빠르게 뛰쳐나가 형을 붙잡았다. 잡자마자 무작정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냐고 주춤거리던 형은 준수와 재중이를 보자 말없이 약품가방을 풀었다.

 

“형.. 형 준수 죽었어요.. 준수 죽었어요..”

 

 내 말에 준수에게 가던 형은 방향을 틀어 재중이에게 다가갔다.

 

“준수 죽었어요.. 혀엉.. 어떡해요..”

 

 재중이의 상태를 살피는 형 옆에 어정쩡하게 서서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가방에서 붕대를 꺼내 여기저기 감고는 갑자기 내 팔을 잡아당겼다.

 

“너 앉아. 너도 붕대 좀 감자.”

“혀엉.. 준수.. 어떡해요..”

“뭘 어떡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나저나 넌 어지럽지도 않냐? 머리에서 이렇게 피를 철철 흘리고서는 울어대기까지 하고.”

“흐흑... 흑...”

“그만 좀 울어. 정신 사나워..”

 

 형은 빠르게 붕대를 감고 약품을 가방에 넣은 후 재중이를 들쳐 업었다.

 

“주, 준수는요?”

“빨리 와.”

“준수는요?!”

“나중에.”

 

 형은 내 손을 잡아끌며 너도 제정신 아니고 재중이녀석도 정상이 아니라 지금은 그냥 가니 건물 위치나 외워두라고 말했다.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그 장소에서 빠져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진지에 도착한 후 재중이는 군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눈도 뜨지 못하고 하얗게 질린 채 실려 가는 모습이 꼭 마지막인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부대 내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누구하나 위로해주는 사람도 없이 전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다행스럽게 아군이 승리해 전투가 있었던 장소는 우리 수중으로 넘어왔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외워두었던 그 건물을 찾아 내달렸다.

 제대로 외웠다고 생각했다. 길 찾는 데에는 자신 있었다. 분명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내가 찾는 건물이 없었다. 비슷한 위치가 몇몇 있었지만 건물이 있었단 흔적만 남아있거나 다른 건물이 우뚝 솟아있거나. 준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찾을 도리가 없었다. 숨이 막혔다.

 

“준수야.. 미안해.. 준수야..”

 

 결국 나는 준수마저도 묻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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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형. 형. 정신 들어?”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일단 처음 보인 건 낯선 천장.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자 독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욱..”

“혀, 형.”

 

 헛구역질을 하는 날 향해 뻗어진 손이 어딘가 익숙했다.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햇빛에 반사되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웃는 모습이 심하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형. 나야. 창민이.”

 

 보자마자 울어버렸다. 울면 안 된다고 간호사가 와서 말려도 밀려드는 설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미안해 창민아. 나 바보야. 나 아무도 지키지 못했어. 내 눈앞에서 유천이도 가고 준수도 갔는데 나 아무것도 못했어. 두 애들 다 묻어주지도 못했어. 재중이도 죽을지도 몰라. 굉장히 많이 다쳐서 정신도 못 차리고 있었는데.

 

“그만 울어 형..”

“미.. 안해 차, 창민... 으헉... 헉..”

“형 책임 아냐. 그리고 나한테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으흑.. 흑..”

“그만 울어. 그리고 재중이형은 멀쩡하니까. 응?”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재중이가 목발을 짚으며 병실로 들어왔다. 온 몸을 붕대로 감다 시피 한 재중이는 들어오자마자 놀란 내색도 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날 대했다.

 

“너 그만 울어라.”

“재중아..”

“닥쳐. 죽는다. 아무 소리 마. 이 새끼는 또 정의의 용사 짓이야. 네가 못 지켜서 미안하냐 새꺄? 밖에서 듣다보니까 진짜 한심해서 못 있겠더구만. 뭘 지켜! 대체 뭘! 쓸데없이 죄책감좀 갖지 말란말야!”

“형! 그만해!”

“그만 좀! 정윤호! 모든 걸 네가 싸안으려 하지 마! 죄책감좀 늘리지 마! 갖지도 마! 그 녀석들은 그냥 운이 없어서 죽은 거라고 생각하란말야! 누군 걔들 안 불쌍하냐? 안 안타깝냐?”

“.....”

“후.. 아..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 그래도.. 나 같았어도 그 상황이었다면 너랑 똑같았을 거니까.. 나도 당황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잊어라. 좀.”

 

 한차례 재중이가 쏟아 부은 다음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계속 울어서 핀잔만 있는 그대로 다 듣긴 했지만, 재중이는 툴툴거리면서도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내가 보름 만에 깨어났다고 했다. 아마 준수를 찾으러 갔다가 그대로 쓰러졌던 것 같다. 아직도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위생병 형이 몰래 뒤따라 왔다가 깜짝 놀라 날 흔들어 깨우는데 숨을 쉬지 않았단다. 겨우겨우 인공호흡을 해 다시 숨을 살려 놓고 병원으로 보내버렸다고 한다. 그러고서 보름. 준수가 죽은 지 보름이 지났다.

 창민이는 여태껏 다른 부대에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모두 사라져 갈팡질팡 하는 사이에 군대로 끌려가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1년 동안. 혼자서. 병원에는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말없이 웃으며 오른쪽 눈을 가리켰다. 홍채가 희다.

 

“실명..이지 뭐. 그래도 팔다리 없는 것 보단 낫잖아?”

 

 여태 창민이가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우리 셋은 병원에서 퇴원하는 걸로 전역을 했다. 전혀 뜻하지 않게 전쟁으로 군복무를 하게 된 셈이었다. 언젠간 군대에 가야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군 생활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셋은 실소를 터뜨렸다.

 

 전쟁은 그 -벤을 타고 가다 폭탄 맞은 그- 날을 기점으로 2년이 조금 지난 후에 끝이 났다. 폐허가 되어버린 땅덩어리를 멍하게 보며 셋은 앞으로 살아야 할 길을 생각했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춤추고 노래하는 것뿐이었으니. 준수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5명이 아니면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던 녀석이야 지금은 없으니.. 우리는 돈을 벌어먹기 위해서라도 시작했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카시오페이아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몇 년이 지나고 나라는 점점 틀이 잡혀갔다. 다시 티비가 나오고 인터넷이 돌아갔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점점 잊고만 있었다. 잊으려고 노력했다.

 

 라디오를 산 기념으로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DJ가 익숙한 이름을 말했다.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순간 손을 멈췄다.

 

-시아준수씨의 무반주버젼 Beautiful Thing 들으시면서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노래가 나오기 전,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목소리도 들린다. 아, 그 꼬마 녀석, 진짜로 전장에 울려 퍼진 한 가수의 노래모음집 해서 판 건가. 살아있긴 했구나.

 

「노래 불러도 되요?」

 

 수줍게 들려오는 준수의 목소리. 아. 우리 준수 목소리가 이랬구나. 낯설어. 왜 낯설지.

 

「그럼 사양은 안할게요..」

 

“우리 착한 준수.. 목소리 들린다. 준수야. 준수야..”

 

 나는 바보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한시도 잊지 못했다. 잊을 거라고 했지만 잊고 싶지 않았다. 다만 순수한 애정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알아야 한다. 순수한 애정이다. 준수야. 나는 너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인해 이렇게 울고 있다. 알고 있어?

 

 네가 유천이와 손잡을 때, 유천이와 안을 때 내 가슴에 대못이 박혀도 순수한 애정 하나로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염없이 울어도, 하염없이 후회해도, 늦게 깨달아 버린 사랑은 이제 갈 곳이 없었다.

 

「It's feel like Beautiful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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