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휼은 벽에 머리를 찧고 있었다. 나가게 해주세요. 아이가 보고 싶어요. 그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반항. 몸을 상하게 하지 않고 상하게 만든다. 코에선 코피가 흘렀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은이를 볼 수 있게 해주세요. 내게 있어 그 아이는, 내 목숨이고 내 모든것의 처음입니다.
마님, 몇년이 흘렀으나 제가 기억하는 그 아이는 아직 목도 가누지 못한 젖먹이랍니다. 기억도 하지 못하는 어미를 찾으며 울진 않았을지, 밥은 잘 먹는지, 얼마나 자랐는지, 방지와 저 중 누구를 가장 많이 닮았을지 알고 싶습니다. 마지막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방원의 얼굴에 노기가 띄었다.
그만 하라. 몸이 상한다.
아이를 보게 해주세요.
그만 하라. 뱃속 아이가 상한다.
은이를 보게 해주세요.
그만 하라. 은이가 다칠 것이다.
무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또 울렸다. 밝게 웃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방원의 머릿속에 남은 최후는 그저 눈물이었다. 마지막으로 웃음을 보았던 날이 무휼의 나이 17세였다. 이제 살이 오르기 시작하는 아기를 안아들고 사랑스럽게 웃었더랬다.
방원의 두번째 아이를 가졌던 어느 날. 그들은 도망했고 방원은 덩그러니 남아있는 은이를 죽이려 했었다. 네 행동의 결과가 이런것이라며 아이의 시신을 던져주고팠다. 자. 여기 네가 그리던 은이가 있다. 실컷 보아라. 방원에겐 불행하게도 그 아이는 무휼을 많이 닮았고 그 덕에 살았다. 잡혀온 무휼은 방원이 보낸 이들에 의해 상처입어 피를 흘린 채 방지를 살려달라 애원했다. 그 덕에 살았다. 이방지는. 이 은도, 이방지도 무휼덕에 살았다.
다시는 얼굴도 보지 못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무휼이 울었다. 방원은 그 얼굴 위에 무휼의 미소를 덧그려봤다. 기억나지 않았다. 무휼에게 사랑받지 못한 방원은 그의 눈물만 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마마. 은이를 보게 해주세요. 아니면 방지라도. 죽음을 앞둔 무휼은 또 울었다. 거죽만 남은 반시신은 고름같은 눈물을 흘렸다. 또. 또 우는구나. 지난 십여년간 넌 울기만 했다. 날 위해 웃어줄 수는 없는 것이냐. 방원은 옷자락을 그러쥐었다. 무휼이 미소를 지었다. 눈은 울면서 입꼬리만 비틀어올렸다. 이리 하면 그들을 볼 수 있을거라는 위안섞인 작위. 그만 소름이 돋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뒤돌았다. 마마. 갈라진 무휼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들리지 않길 원했다. 비가 심하게 내리던 그날 오후. 무휼은 혼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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