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
판호가 아프다. 처음엔 별거 아니라 하더니 곧 죽을 병이라 했다.
"병명이 C.. 씨...에이? 뭐라 카더라꼬예.."
무식한 녀석들은 제 형님의 병명도 제대로 몰랐다. 나라고 들어봤자 제대로 알 수 있는건 아니었다. 병 자체보단 합병증이 위험하다 했다. 그리고 판호는 지금 그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다. 몇년만에 보는 얼굴은 평소처럼 능청맞았다.
"하이고마. 아프다니까 형배 니까지 다 찾아오고. 내 유명인사 다 됐나보네."
2년전에 봤을때보다 살이 빠져있었다. 2년전, 판호는 둘째를 낳고서 애들과 함께 내 앞에서 사라졌다. 나의 일방적인 강간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들을 안고 머리카락하나 보이지 않은채 꽁꽁 숨어서 잘도 도망다녔다. 최형배 너의 핏줄을 이은 새끼들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데려갔었다. 그러나 판호는 아이들을 죽이지 못했다.
나는 판호를 훑어봤다. 그동안도 꽤 아팠는지 두 눈이 음푹 들어가 있었다. 곧 죽어도 허세를 부리며 웃는 판호에게 다가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천천히 손을 내려 음푹 꺼진 눈두덩이도 만져보고 푹 패인 볼살도 만져봤다.
"와이리 말랐노?"
"누가 하도 말을 안들어가 이래 됐다."
판호에게 남은 기간은 삼개월정도라고 했다. 입이 바싹 말랐다. 내 표정이 좋지 않았던지 판호의 큰 손바닥이 내 볼을 쳤다. 인상쓰는것이 보기 싫다 했다.
병실 밖을 나오니 벽에 일렬로 서 있는 판호네 녀석들이 보였다. 판호의 부탁대로 조직을 해산시켰다. 떠나는 녀석들에게는 퇴직금을 챙겨주었고, 남아있길 원하는 녀석들은 우리 조직으로 편입시켰다. 판호는 자기가 직접 하지 못한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급작스레 일이 생겨 나갔다가 이틀이나 지나야 겨우 다시 보러 갈 수 있었다. 판호는 이틀 전처럼 호기롭게 웃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안색이 말이 아니다. 나는 다짜고짜 아이들은 잘 지내냐고 물었다. 판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 판호를 뒤로 한 채 병실을 나와 집으로 갔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는지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일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더니 판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고 있었다. 하룻새 링거가 더 늘었다. 무슨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새벽에 크게 앓았다고 한다.
“와 내를 안 불렀는데?”
“판호행님이 부르지 마라캤심더.”
형배 그놈아는 자는 거 깨우면 안 좋아한다면서. 잠든 이의 이불을 목 까지 덮어준 후에 판호쪽 녀석들에게 아이들에 대해 물었다. 녀석들은 의외로 순순히 말을 해 주었다. 사람을 시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한다. 어디 있냐 했더니 판호의 집이라 했다. 말을 듣자마자 몸을 돌려 녀석의 집으로 갔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까만 눈동자가 말똥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첫째 민범이. 둘째 딸 아이는 방에서 자고 있다 했다.
“민범이 마이 컸네. 내 누군지 아나?”
“몰라예.”
“자슥이. 내 니 아빠다.”
낯을 가리느라 섣불리 다가오지 않는다. 괜찮으니 가까이 와보라 달래어 어렵사리 안아들었다. 민범이를 안고 딸아이가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젖비린내가 훅 끼쳤다.
“아 이름은 민재라 캅니다. 최민재.”
곤하게 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갓 두돌이 지난 아이는 너무나 작았다. 판호의 병과 함께 아이들의 존재가 새삼 내 어깨를 짓눌렀다.
판호는 내가 허락도 없이 아이들을 만난 것에 대해 화를 냈다. 너는 씨만 뿌릴 줄 알았지 그 아이들에게 해준 게 무엇이 있느냐며 이 이상 아이들에게 접근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 으름장을 놨다. 괜히 울컥했다. 나라고 한번도 내 아이들을 생각 안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관여 안하면, 니 디지면 아 들은 우짤라꼬 내한테 이라는데?”
“머라꼬? 이 새끼야 지금 내가..! 니는 그래.. 내보다 아들이 더 중요하재? 씹새끼야 니는 여전히 개새끼다. 내가 어떤 맘으로 아들 낳고 키웠는지 니는 모르재!”
김판호 말대로 나는 개새끼라, 내게 강간을 당하고 뱃속에 그 원수같은 놈의 아이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심정 따위 알고 싶지 않다. 판호는 베개를 집어 던지며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라고 윽박질렀다. 내 얼굴에 베개가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다가가 머리채를 잡았다. 굽실하고 퍽퍽한 머리카락이 내 손 안 가득 잡혔다. 뺨을 두어번 내리치니 몸을 파득이며 떨었다. 살이 없는 볼은 내리치는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시켜 녀석의 골을 울리게 만들었다. 아픈건 아프더라도 나한테 대드는 건 참을 수가 없다. 판호녀석은 놀란듯 두 눈에 눈물을 담은 채 날 바라보다 마른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울었다. 엎드리다 상체가 살짝 드러났는데 김판호에게서는 한번도 볼 수 없었던 갈비뼈가 드러나 보였다. 몸에 소름이 돋으며 뒷목에 찬기운이 느껴져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천천히 생각했다. 병실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남은 세 달 중 일주일을 까먹었다. 판호를 보러 가지 못했던 대신 꾸준히 아이들을 찾아갔다. 민재는 아직은 웅얼대지만 곧 잘 말을 했다. 민재가 주로 하는 말은 엄마 였다.
“엄마 오데갔노?”
“엄마 찾지 마라. 민재는 인제 아빠랑 살아야 된다.”
민재는 아직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는 턱에 돌보는데 애를 먹인다. 민범이는 이제 겨우 네살인 녀석이 제법 의젓해서 맘에 들었다. 녀석은 판호를 쏙 빼닮았다.
이틀이 더 지난 후에야 판호를 찾아 갈 면목이 생겼다. 최형배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굽힌 것이었지만 판호는 뒤돌아 누운 채 나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대로 죽게 놔둬라. 내는 니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참말이가? 다시는 안볼끼가?”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을 패는거는.. 사람도 아이다. 내가 대구빡이 맛이 갔재.. 니를 머할라꼬 보고싶다 했노..”
목소리가 유달리 떨린다 싶었다. 나는 단지 마른 등이 쓸쓸해 보여 쓸어주고 싶어 가만히 다가가 등에 손을 얹었는데 떨림이 느껴졌다. 혹시 우는건가 싶어 얼굴을 쳐다봤더니 하얗게 질린 얼굴에 식은땀이 맺혀있다. 몸을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떤다.
“뭐, 뭐꼬? 니 와이라노?”
“헉..”
“판호야. 니 와이라노? 창우야!”
창우는 판호의 상태를 보더니 급하게 의사를 호출했다. 판호가 몸을 뒤틀며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너무 놀라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다. 그간 판호를 돌봤던 녀석들이 달려와 익숙하게 판호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나와 다른 이들을 모두 내보냈다. 다른 녀석들은 문가에서 뒤를 돈 채 안쪽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병실에선 판호의 비명소리가 아프게 울렸다. 눈을 까뒤집은 채 내 이름만을 불렀다. 판호의 비명 섞인 울음소리만이 내 귀를 때렸고 이 이후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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