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휼은 궁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란을 만났다. 구하기 어려운 약이다. 궁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인즉, 넌 이제부로 전하의 사람이 될 것이야. 구정물 처럼 보이는 그것은 제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것이다. 지란은 이미 지나간 길이었고 무휼이 뒤를 이을 차례이다. 선왕의 후궁 지란, 현왕의 후궁이 될 무휼. 무휼, 어명을 받잡겠나이다.
약을 먹고 난 후 오로지 사내뿐이었던 몸에 변화가 생겼다. 사내를 받을 수 있는 길. 그리고 수태를 할 수 있는 공간따위가 그러했다.
전하. 소신은 전하의 칼로서 세상에 나온 몸이옵니다. 하오니 첩지를 거둬주소서. 무휼의 청은 허공에 흩어졌다. 방원은, 임금은 약을 내렸다.
곱게 빗어 넘긴 머리가 어색했다 무휼에겐. 이리저리 흩어진 머리, 검을 잡아 굳은 손아귀는 이제 버려질 시간이었다. 미안하다 무휼. 내 방원이를 제대로 말리지 못했다. 지란은 연신 사과를 거듭했다. 그 조차도 선왕의 태를 가진 몸. 무휼은 모든 것이 우스웠다. 저도 곧, 장군처럼 되겠지요. 장군처럼 전장을 휘젓던 몸 조차도. 지란은 쓰게 웃었다. 내 이 나이에 아이를 가질줄 알았니. 그걸 얘기하는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다른 말을 한다. 무휼은 곧 약을 마신다. 마시고 난 후엔 뭇 다른 후궁들처럼 궁에 박혀 회임하기만을 기다리겠지.

지란은 항상 배가 불러 있었다. 이제 그만 불러야 하는 나이 이건만, 그간 이루지 못한것을 모두 이루겠다는 듯 늘 배가 불렀다. 나오는 아이들은 대개 약해 명이 짧았다. 어미는 죽어 늘어진 아이들을 안고 섧게 울었다. 성니매, 내 더 이상은 못하겠음메. 이 나이 되도록 아이를 제대로 낳아 키우질 못하니 후궁 되어 뭣 하겠습니까. 지란의 눈물에도 전하의 마음은 굳건했다. 넌 나의 후궁이다. 비록 후계를 이을 수 없다 한들 넌 나의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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