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한양 사대부들의 집에서는 종복들끼리 쑥덕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요 얼마간 큰 화제가 되었던 조말생 대감의 집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서로 꺼내느라 제 주인들이 퇴청하는것을 보지 못하여 숫하게 혼이 났다. 주인들이 사정을 들어보니 심상치 않은 일이라. 가까운 정자에서 소문을 들은 자들끼리 회동을 열었다. 사내의 회임이라니. 이 무슨 세상의 이치와 성리학의 질서에 위배되는 말인가. 도성안 사대부들은 이 소문의 근원지인 조말생의 집 사랑을 두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조말생이 퇴청한 후에도 주상께서는 눈을 붙이지 못하시니, 날이 밝을 때 까지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말도 하시지 못하였다. 경연도 어찌 하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고 조말생을 따라 무휼이 있을 사랑 앞에 멈춰 서신다. 전하. 어찌 그러시옵니까? 겁이 난다. 무휼이 과인을 밀어낼까 겁이 나 들어가질 못하겠다. 그럴 일은 없사오니 어서 드소서. 공기가 차옵니다. 주상께오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사랑 안으로 들어가셨다. 들어서자마자 등을 보인 채 누워있는 무휼의 마른 등이 보인다. 일순 숨을 삼키시며 간간히 움직이는 얇은 등을 지켜보셨다. 무휼. 어서 일어나거라. 예를 갖춰야 할 분이 오셨느니라. 어떤분이십니까? 영의정이라도 오셨습니까? 아니면 저의 목숨을 거두어갈 분이라도 오셨습니까? 이놈! 더 큰 소리를 내려는 찰나 주상께서 손을 들어 그만 두라 이르셨다. 이내 침묵이 내려앉았고, 그 고요함 가운데 주상께서 무휼을 부르셨다. 무휼아.
무휼은 몸을 퍼득였다. 들려올 리 없는 목소리가 등골에 와 닿자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무휼아. 다시 한 번 들려오니 꿈결은 아닌 것만 같아 고개를 돌린다. 그 곳에는 사복을 입고 계시는 주상이 있었다. 무휼은 몸을 눈을 두어번 꿈뻑이며 주상을 바라보다 급히 몸을 일으켰으나 이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계속 누워있다 갑자기 일어난 까닭이다. 주상께서는 급히 무휼에게 다가가 가누지 못하는 머리를 받쳐주시고 얼굴을 옥수로 쓸어주시었다. 무휼은 여태껏 울어 부어버린 눈 위에 또다시 눈물자욱을 길게 내보내었다. 전하. 정녕 전하시옵니까? 그래. 이리 지척에 있으면서 어찌 과인을 찾아오지 않았느냐? 송구하옵니다 전하. 연거푸 송구하다는 말에 주상께서는 그만하면 되었다 하시며 무휼을 다시 자리에 눕혔다. 그토록 그리던 이들이 서로 눈앞에 있다. 무휼이 그리던 주상은 여전히 강건한 자태이시나 주상께서 그리시던 무휼은 너무나 달랐다. 두 해전에 헤어진 무휼만을 알고 계시었다. 무사다운 날카로운 눈매와 태산 같던 기운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이리도 마르고 연약한 사람만이 남아있다. 주상께서는 기가막히셨다. 천자께서는 무휼에게 왜 그러한 일을 한 것인가. 차라리 죽었으면 오히려 편안히 놓아주었을 것을 어찌 이리 잔인하게 살려두었단 말인가. 대역죄인이라 하면 응당 이러한 일들을 겪어야 하는가. 주상께서는 마른 볼을 쓰다듬어 주시다 천천히 옥수를 내리시어 무휼의 가느다란 팔목을 쥐셨다. 무휼은 주상께서 염려하실것을 걱정하여 힘을 줘 보나 미약하게 떨리기만 할 뿐. 그저 흔들리기만 한다. 주상께서는 기어코 옥루를 끊임없이 흘리신다. 무휼아. 네 이 손목 부서지며 얼마나 울었느냐. 너의 자랑이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며 네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냐. 사내로서 또한 얼마나 수치스러웠느냐. 무휼아. 과인을 책망하여라. 무휼아. 무휼아. 내 이런 꼴을 보기 위해 너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전하. 소신은 전하를 책망하지 않사옵니다. 그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제 자신을 탓할 뿐이옵니다.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것은 과인의 덕이 부족한 까닭이다. 주상께서는 손목을 지나쳐 제법 테가 나기 시작하는 배를 천천히 쓰다듬으셨다. 무휼은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으나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아니하였다.
그 후로 주상께오선 일과를 마치신 후 매일같이 조말생의 사랑으로 드나드시었다. 회임으로 인하여 힘들어하는 무휼을 돌보시기 위함이다. 주상께오선 무휼의 두 손을 들어 매만져주시며 때로는 친히 안아주시며 배를 쓰다듬어 주시기까지 하시니, 무휼은 몸 둘 바를 모른다. 그런 날이 며칠 지속되자 이전처럼 패악을 부리던 기운은 사라지고 주는 밥 잘 먹으며 오도카니 앉아서 밤이 올 때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주상께오서 매일 오신다는 보장은 없으나 이리 님을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 궁이 있는 쪽을 바라보니, 꼭 주상께오서도 궁 안에서 저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하루는 그날따라 지키는 눈들이 많아 잠행하지 못하시었는데 주상께오선 나가지 못하시어 애가 닳았다. 무휼은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고 다음날 침울한 얼굴로 주상을 맞이하였다. 무휼아. 어찌 이런 얼굴이냐? 내 하루 못왔다고 이리 삐진 것이냐? 아니옵니다. 전하께오서 업무가 많으심을 알고있사옵니다. 허나 네 얼굴은 그게 아니구나. 주상께선 토라진 무휼을 달래시며 불툭한 배를 쓸어주시었다. 문득 느껴지는 태동에 잠시 쓸어주시는걸 멈추시고 배를 지긋이 바라보시니, 무휼은 그동안 제가 회임을 했단 사실을 잊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전하. 옥수를 거두소서. 불경한 자의 씨입니다. 전하께 닿으면 아니 될 일입니다. 이제 쓰다듬어주시는 것을 멈추소서. 그 말에 주상께오서 천천히 고개를 저으시다 무휼과 눈을 맞추시었다. 주상께오선 무휼을 몇 번 부르시었고 무휼은 몇 번 화답하였다. 너에게 너무 어려운 부탁인줄은 안다. 이 아이를 미워하지 말거라. 무슨 말씀이시오니까? 소신 미욱하여 알아들을 수 없사옵니다. 이 아이는 죄가 없다. 살아있다는 것이 죄인 것은 아니지 않느냐. 전하. 소신의 귀가 잘못된 것이옵니까? 소신이 잘못 들은 것이옵니까?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무휼아. 이 아이를 과인의 아이라 생각하여 줄 수는 없느냐? 너와 나 사이의 아이라 생각해 줄 수는 없는 것이냐?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 생긴 아이이다. 사내의 몸에서 아이가 자라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이더냐? 어쩌면 이 아이는 귀한 아이일 지도 모른다. 이대로 아이를 없애게 되면 네 몸 또한 망가질지 모르는 일이다. 과인은 너를 잃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이 아이를 살리고 싶다. 그러니 아이의 비어있는 아비 몫을 내게 다오. 무휼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어찌 주상께서 제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하여 지독한 배신감에 이가 갈리면서도 아이의 아비가 되어주신다는 말씀에 회가 동하니 마음이 갈팡질팡 한다. 허나 아니 될 말이다. 어찌 감히 이 아이가 주상의 아이이며 저가 주상과 배를 맞췄다 상상하겠는가. 이러한 불충은 없으나 그러한 언사를 먼저 꺼내신 것은 주상이시니 무휼은 혼란스러워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아이를 죽이려 네 몸을 혹사하지 말거라. 더 이상 그러지 말거라. 살아주어라. 아이와 함께 끝까지 살아주어 너를 이리 만든 이국의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주어라. 이것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 네 몸으로 들어온 생명이니라. 내치지 말거라. 무휼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 이상 쳐다보려 하지도 말을 섞으려 하지도 않았다. 주상께오선 떠나시기 전 무휼에게 이름자 하나를 친히 쓰시어 건네주셨다. 겸兼이다. 과인이 예전, 네 아이가 태어날 즈음에 주려 하였던 이름이다. 이 이름이 쓰일지 아니 쓰일지는 네게 달려있다.
주상께선 그날 이후 한동안 조말생의 사랑에 출입하시지 아니하셨고, 무휼은 이름자 적힌 종이를 하루 종일 쳐다만 보았다. 세상에 나지도 못하고 제 어미와 같이 죽었던 아이가 생각났다. 딸인지 아들인지도 모르고 얼굴도 보지 못하였다. 나오고 싶어 안간힘을 썼을진데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못하고 뱃속에서 어미를 따라 죽었다 하였다.
겸. 겸이라. 주상의 성정과 꼭 맞는 반듯한 휘호를 손으로 매만지니 뱃속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 이름이 좋은 것이냐? 아직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태아일진데 그 말 한마디에 배를 퍽 하고 차버린다. 무휼은 울듯말듯한 얼굴이 되었고, 이내 울고 말았다.
조말생은 주상께 무휼의 근황을 전해드리며 무휼이 그 이름을 받잡았다 아뢰었다. 아무리 대부가 되어주신다 하나 감히 전하의 성을 따를 수는 없으니 그동안 쓰지 않던 저의 본 성을 붙여 조 겸이라 할 것이라 하였다. 주상께서는 매우 기꺼워 하시었다. 무휼이 아이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살겠다는 의지로 보였음이라. 본디 아이의 아비가 되겠다 생각을 하셨던 것이 아니었으나 무휼이 지극히 아이를 거부하니 무휼이고 복중태아고 너무나 가엾으셨던 것이다. 무휼은 아직 어색하나 곧잘 배를 쓰다듬으며 겸이라 불러주었다. 옛 생각에 울컥 이며 역겨움이 치솟을 때면 아비라 생각해 달라시던 주상의 옥음을 떠올렸다. 이 아이의 아비는 전하이시다. 결코 이국 오랑캐의 더러운 씨가 아닌 이 나라 지존의 씨이다. 그리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몸을 웅크린 채 양 팔로 배를 덮었다.
그때에 예판 댁에서는 수상한 낌새를 감지한 이들이 모여 언제 조말생의 사랑에 들이닥칠지 논의 중이었다. 현재는 주상의 눈에 들지 못하여 겉돌고 있으나 선왕의 총애를 받았던 조말생이니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먼저 두어 사람이 볼일이 있다 하여 조말생의 사저에 들렸으나, 조말생은 사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객들을 모신 까닭에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주상께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으니 진상을 밝혀 달라 청하게 되었다. 무슨 소문이냐 하문하시어 저자에는 지금 회임을 한 사내가 있다는 소문인 것인데, 그 사내가 조대감의 사랑에 기거하고 있다 하니 이 소문이 과연 사실인가 하여 모든 것을 낱낱이 밝혀 달라 한다. 조말생과 주상의 낯빛이 변하였고, 그것을 예민하게 간파한 몇 대신들의 항의가 뒤따랐다. 조대감은 무엇을 숨기는가! 이 흉흉한 소문에 떳떳하시다면 이 자리에서 명명백백 밝히시라. 조말생은 흘긋이며 주상의 용안을 살피었다. 주상의 용안은 근심이 서려있었고, 조말생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대들이 그리 원한다면 내 직접 사랑을 보여드리겠소이다.
회동 이 후 조말생은 급히 사람을 보내어 사랑에서 무휼을 빼내어 종자들의 방 안에 숨겨두었다. 끗발의 차로 대신들과 무휼은 어긋났고, 조말생은 빈 사랑에 안도하며 대신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깟 어리석은 소문에 호도되어 나를 깎으려 함인가! 대신들은 조말생의 당당함에 조금 위축이 되었으나 이내 급히 누군가가 떠난 자리를 보게 되었고, 그날은 꼬리를 내렸으나 추적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때에 빈 사랑을 눈으로 확인하였던 사람 중에는 호조판서인 무휼의 장인도 있었는데, 소문속의 사내가 저의 사위인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성리학의 이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주자의 글을 탐독하기 좋아하는 그로서는 생태를 거슬러 가는 소문속의 사내를 마냥 두고 볼 수는 없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여 조말생의 사택 주변에 심복을 심어두었고, 그 사실을 모르는 조말생은 무휼을 야심한 밤 중에 가리온의 집으로 옮겨두었다. 가리온은 느닷없는 무휼의 출입에 놀란 기색이었으나 이내 무휼을 아랫목으로 모시며 사정을 들었다. 무휼나으리. 고생이 많으십니다. 몸은 어떠하십니까? 그간의 패악으로 무휼에게 다가가지 못하였으니 몸 상태를 소상히 알지 못해 진맥을 한다 고하였다. 맥을 짚는 동안 한결 부드러워보이는 무휼의 기운에 안심을 하여 밖의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하였다. 무휼 또한 약해진 기운으로는 타인을 알아내지 못하였으니, 심복은 쉽게 빠져나와 제 주인에게 사실을 고하였다. 장인은 두 눈이 커졌다. 방금 무어라 하였느냐? 분명 가리온이 무휼나으리라 하였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죽은줄 알았던 제 사위가 소문의 사내였다는 사실인 즉, 죽여야 될 사내가 무휼이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 무휼이 그러할 리 없다. 네 감히 내게 거짓을 고하느냐! 거짓이 아닙니다. 쇤네 이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장인은 얼마 전 주상의 명으로 조촐히 무휼의 제를 치렀다. 과연 조선의 무사다운 죽음이었고 뜻 깊은 희생이었다고 칭송하였다. 그리하였는데 살아있는데다 성리학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니. 장인은 무휼을 용서 할 수 없었다.
무휼은 가리온의 집으로 옮겨온 후 불안함에 떨고있다. 조정의 중신들이 이 일에 대해 알아버렸다. 이제야 겨우 살아갈 마음을 잡고 아이도 받아들였는데 외부의 사람들이 저와 제 아이를 위협한다. 가리온이 장작을 지펴 따끈한 아랫목에 앉아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몸이 오돌오돌 떨린다. 이 집도 안전치 못할 것인데 이제 어찌 하여야 한단 말인가. 그리 생각에 잠겨 있을때 문 밖에서 저를 찾는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무휼 네 이놈 어서 나오지 못할까!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꾸짖음이 두어번 더 들려오자 무휼은 비틀거리며 방에서 기어가 문고리를 잡았다. 두려움에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 몇 번 문고리를 놓친 후 빼꼼히 방문을 열었다. 차가운 초봄의 바람이 얼굴에 불어왔고, 엄한 얼굴의 장인이 꼿꼿이 서 있었다. 달달 떨리는 다리를 채찍질 하여 겨우 일어나 방문 밖으로 조심스레 나왔다. 장인은 기가 막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사위가 이리 살아 있는 것도 기가 막혔고 배불뚝이가 된 채 뒤뚱거리며 걸어 나오는 모습 또한 기가 막히었다. 장인은 성큼 걸어가 무휼의 면에 손바닥을 걷어붙였다. 짜악 하는 소리가 크게 나자 지나가던 행인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구경을 하였고, 그들의 시선을 느낀 장인은 서둘러 무휼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장인은 무휼을 거칠게 꿇려놓았고 크게 꾸중을 하였다. 내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하야 금지옥엽 외동딸을 주어 장인과 사위라는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닐진대, 네놈이 조선을 배신하고 성상을 배신하여 살아돌아온것을 어찌 이루 말할 셈이냐! 그리고 그 더러운 복중의 태아는 누구의 씨인가! 누구의 씨이기에 부정하게 사내의 몸에 들어선단 말인가! 무휼은 한 팔로 배를 감싸 안으며 장인을 바라보았다. 제가 살아 돌아온 것이 그리 싫으십니까? 우리 부인께서 그리 가신 후 자식이 없다 하여 저를 아들 삼아 주신 것은 어른이 아니십니까? 말대꾸 말라! 나는 지저분하게 몸을 굴려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것을 잉태한 사내를 모른다. 그것은 누구의 씨냐 물었다. 무휼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때의 무휼은 이미 이 전의 모든 일을 기억 속에 묻은 채 이 아이가 주상의 아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그저 부정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 외에는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입을 함부로 놀리어 주상께 해가 가면 아니 될 말이다. 이 모든 것은 대역죄인이 살아 돌아온 죄. 스스로가 감내해야 할 일이다. 어른과 세상은 저와 이것을 불경하다 하나 아닙니다. 제게 이 아이는 결코 불경하지 않습니다. 부인과 아이가 함께 떠난 지 십 수 년이 지났고 저는 이때껏 홀로 살아왔습니다. 제게 어렵게 생긴 가족입니다. 혹시 압니까? 그때에 떠났던 아이가 다시금 제 뱃속으로 돌아왔는지. 장인은 조금 비틀대다 주저앉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이며 무휼의 어깨를 쥐어 잡고 흐느끼는 소리를 낸다. 그게 사대부로서 할 소리더냐? 무휼아! 정녕 내 손으로 너를 죽여야 한단 말이냐. 장인은 입을 꾹 다문 무휼의 어깨를 때리며 통곡을 하였다. 장인은 가리온이 무휼을 돌보기 위해 잠시 집에 들어올 때까지 울었다. 무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때까지의 사정을 다 말한 후 대감마님 진정하시라 물을 떠 바쳤다. 물을 한번에 들이킨 장인은 그리하여도 무휼 너는 성리학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존재이며 유림들이 이 일을 알게 될 시 일어날 반향이 클 것이라 경고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이 전에 너는 내 사위이자 아들이니, 내 힘닿는 데만큼 도와주겠노라 하였다. 한숨처럼 흘리는 그 말 한마디에도 무휼은 감사하게 여겼다.
장인이 돌아간 후, 가리온과 함께 장인댁으로 가는 길에 잠시 부인의 묘에 들렀다. 무휼은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한 묘를 보며 가리온에게 감사하다 하였다. 작은 부탁이었으나 성심을 다 하여 돌보아 준 것이 분명하다. 이 못난 서방 만나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그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으니 나를 원망할 것이 분명할 테지요. 지금 내 꼴이 우스워 절은 해드리지 못하오니 이것 또한 용서하지 마시오. 술을 몇잔 뿌려주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니 멀리서 부엉이가 운다. 장인댁에 당도한 후 장인과 장모에게 절을 올리고 사정을 일렀다. 장모는 말이 없이 그저 어서 들라 이르고는 고개를 돌렸다. 장인이 내어준 방은 부인이 어릴적 지내던 방이었는데, 무휼은 그 방에 몸을 뉘었으나 잠들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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