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는 오리의 소개로 노리를 만났지만 노리는 필리를 탐탁치 않아했어. 의도가 불순한게 맘에 들었지만 샌님같은 놈이 자꾸 매달려서 짜증이 난거. 이게 무슨 일인데 그렇게 매달리는거고 뭘로 보상을 해줄거냐 물었더니 돈을 주겠다고 했어. 니네집 빈털털이인거 다 아는데 무슨 수로 주겠냐고 쏘아붙이니 실은 지금은 줄수 없고 대학교에 붙을때까지만 기다려달라는거야. 정말 크게 보상을 해주겠으니 제발 부탁한다고. 쪼끄만놈이 몇달을 쫒아다니며 손발이 닳도록 애원해대는데 더 이상 거부할 수가 없어서 수락을 해버림.


킬리에겐 별 일이 없었어. 알파나 오메가라는게 정말 희귀한것이라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에 알파오메가가 있을거란 사실조차 생각해내지 못할 정도였고 특히나 남성오메가는 더더욱 드무니까. 더더욱 킬리가 그런 종류의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음. 모두가 학교에 가 있을 시간에 껄렁거리며 돌아다니는걸 보고 저새끼 저거 사고치고 다니는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뿐이었음. 킬리는 그게 너무나 다행이었어. 차라리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길 바랬어. 킬리는 제 비밀을 레골라스에게도 말 하지 않았음. 오메가라는게 밝혀지자마자 우수수 떨어져나간-그래도 둘 정도는 아직도 허물없이 연락 하고 지냄- 친구라고 생각했던 놈들과는 달리 그와는 오래도록 좋은 친구로 남고 싶었어. 레골라스는 사정이 전혀 달랐음. 처음 느껴보는 간질간질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될지 몰라서 그냥 킬리가 좋아할만한 것을 무조건 갖다 바치고 있었어. 킬리는 부담스러워했지만 레골라스가 그간 친구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로 그냥 처음 사귄 친구에 대한 표현인가보다^^ 하는 오해를 하고 있었음.


소린은 몸에서 생기는 어떠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약을 먹었고 힛싸가 오면 스란두일에게 안겼어. 변화에 둔감한 소린이 눈치를 챈 것은 힛싸기간이 오지 않았는데 ㅇ액이 찔끔 나오기 시작했을때. 일하다 갑자기 액이 나왔어. 그렇다고 힛싸가 온것도 아냐. 소린은 두려움에 저도 모르게 드왈린을 쳐다봤는데 드왈린이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잖아. 소린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화장실로 가 뒷처리를 하고 나왔어. 아무래도 소린이 알파성이 워낙 강해서 생긴 부작용인거같음. 그만둬야겠다고 말해야겠어.. 아냐. 그러면 킬리는.. 하지만 더 이상 그 집에 가기 싫어. 하지만.. 하지만 이러다 내가 잘못되서 죽기라도 한다면. 소린은 입술에서 피가나는것도 모른 채로 세게 짓씹었어. 지나가던 드왈린이 놀라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소린의 눈에 담긴 두려움을 읽었어. "무슨일 있나?" 아니라고는 말 하지만 드왈린에게 매달리는 듯한 느낌을 가득 받았어. 하지만 드왈린은 해줄수 있는게 없었고 그저 더 이상 입술을 깨물지 말라며 손수건으로 입술을 꾹 눌러주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음. 소린은 사라져가는 드왈린의 뒷모습에 끝까지 매달리다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곤 다시 일터로 돌아갔음.


스란두일은 소린의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어떤 놈이 굉장히 거슬렸어. 저놈이 뭔데 감히 내 암컷의 집 주변을 빙빙 도는거? 당장에 뒷조사를 시켜왔더니 별볼일 없는 놈이야. 장난감 가게 하는 놈이라고. 형사였는데 그만두고 장난감가게나 하면서 고아원이나 양로원같은곳에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맘씨좋은 아저씨 코스를 한다는거야. "그 일을 담당했던 형사였습니다." 일반 사람들에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사건이지만 스란두일이나, 소린, 스라인 같은 큰 기업의 간부들, 혹은 그와 가까운 사람들만 알고 있던 '그 일'을 담당했던 사람이었어. 필리가 이 일을 어렴풋이 알고있는  건 소린과 디스가 이야기 하는걸 귓동냥으로 들었기 때문임. 

막 성인이 된지 얼마 안됐던 스란두일은 그를 한번 본 적이 있었어. 두 눈이 시뻘개진채로 지나가던 모습은 지옥에서라도 금방 올라온 사람처럼 보였어.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두려움을 줬던 사람이었는데 현재의 모습이 찍혀있는 사진속에선.. 그냥 정신세계 독특한 옆집 아저씨같았음. "보푸르." 스란두일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이 자가 왜 소린의 집 근처를 서성이는지 또다른 의문이 들었음.


스란두일은 약을 눈 앞에 두고 불안해하는 소린이 의아했음. 워낙 싫어하긴 했었지만 저렇게 눈치를 보고 눈을 굴려가면서 불안해 하지는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냐 물어도 아무일 없다면서 고개를 내저었음. 소린은 사실 지금도 액이 흘러나와서 오기전에 패드를 하나 붙이고 왔음. 이 기분이 너무나 끔찍하고 엿같아서 진심으로 그만두겠다 하는 말이 혀끝에서 맴돌았어. 그만둘거야. 난 알파라고. 더 이상 이런 기분 느끼기 싫어.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 입 안에서만 굴렀음. 결국 한참만의 고민 끝에 눈을 질끈 감고 약을 먹었어. 스란두일도 심란해 하는 소린의 기운이 느껴져 마냥 기분이 좋지 않았음. 소린을 정말로 임신시켜버릴까 하다가 백번 양보해서 그냥 약만 먹이는걸로 끝났건데 소린이 그 마저도 너무 싫어하니까. 넌 지금 나와 거래하는 관계니 거부하지 말라고 윽박을 질러버렸음. 소린은 우울한 눈으로 스란두일을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음.

부작용은 점점 심해지는지 아직 때도 아닌데 힛싸가 퍽퍽 터져. 일을 가기 위해 준비를 하다 온 가족이 다 있는 곳에서 힛싸가 터진적도 있었음. 벌벌 떨면서 허겁지겁 집을 나왔어. 필리와 킬리가 알아서도 안되었고 무엇보다 아버지인 스라인이 알파였음. 소린의 오메가향을 맡고 스라인이 눈빛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던거. 집을 뛰쳐나온 소린은 정처없이 도망치다 어느 후미진 골목 안쪽에 쓰러졌음. 미칠것같은 쾌감 속에 스란두일이 줬던 핸드폰이 떠올랐고 단축키 1번을 눌러 전화를 걸었음.

스란두일은 회의중에 울리는 전화에 눈쌀을 찌푸렸으나 그게 곧 자기꺼라는걸 알고 일그러뜨리던 눈썹을 사악 풀었음. 발신자는 소린이었는데 왠일로 전화를 다^^ 하며 기뻐하던 스란두일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린의 신음소리에 놀라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버렸어. 정신을 잃어가는 소린은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만일을 대비해 켜두었던 gps 덕분에 스란두일은 소린을 찾을수 있었음. 신속히 이루어져 불의의 사고는 면할수 있었지만 스란두일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음. 한달 안에 힛싸가 두번이나 터지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증상이란거지. 

힛싸가 끝난 후 병원에 가보자 했지만 거부했어. 무서워서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일터에서 하혈을 주룩주룩 하는 바람에 병원에 실려갔음. 보호자격으로 따라간 드왈린은 소린이 깨어날때까지 곁에 있어주었고 스란두일의 지시로 특실로 옮겨졌음. 스란두일은 막히는 길 위에서 연신 화를 내는 중이었고 드왈린은 그가 깨어나자 몸 잘 추스리고 오라며 돌아갔어. 현장을 오래 비울수 없으니까. 그래서 소린은 혼자서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음. "유산입니다. 3주정도 되었습니다." "저.. 전 알파입니다만.." 병원측에서는 이미 소린의 신원을 조사했기 때문에 그가 알파라는걸 알고 있었음. 하지만 검사결과 소린의 형질은 완벽하게 오메가로 변해있었어. 심지어는 오메가들에게만 있는 자궁까지 어설프게나마 만들어져 있었음. 소린은 충격으로 머릿속이 하얘졌어. 이명이 울리며 속이 거북해졌음. "아니에요. 전 알파인데.. 알파라구요. 오메가 아니에요.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주세요." 소린은 벽에 걸려있는 엑스레이 사진을 똑바로 쳐다보며 계속 같은말만 반복했어. 사진속 소린의 몸에는 작고 동그란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해 있음. 소린은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어. 그러다 곧 몸부림을 치며 오열을 했고 욕설을 내뱉었음. 그 바람에 링겔병이 쓰러져 깨졌고 아직 꽂혀있는 바늘때문에 피가 역류해 바닥이 금새 피칠갑이 되었음. 뒤늦게 도착한 스란두일은 소린의 비명소리에 놀라 서둘러 병실로 들어갔는데 남자 수간호사들이 소린을 진정시키며 몸을 누르고 있었어. 스란두일을 발견한 소린의 눈이 형형하게 빛이 났고 스란두일은 자기가 해결하겠다며 모두를 내쫒았음. 소린은 맨발에 병조각이 박히는것도 모르고 뛰쳐나와 스란두일을 패대기치며 때리기 시작했어. "너 때문이야! 네가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어! 네가 없어도 우린..!" 문득 동작이 멈췄어. 의외로 힘이 셌던 소린은 스란두일의 코뼈를 부러뜨렸음. 스란두일의 코피를 보며 이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떠올랐고, 소린 스스로가 자초했다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필리와 킬리, 특히 킬리가 떠올랐어. 소린은 지금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질러버린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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