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와 킬리는 삼일째 연락이 안되는 삼촌때문에 발을 동동 굴렀음.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하려고 해도 절차가 복잡해서 포기하고 나와버렸음. 집으로 돌아온 킬리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버렸음. 나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내가 멍청해서 삼촌이 도망간거라고 우리 이제 어떡하냐고 흐느꼈음. 필리는 그럴리 없다며 몸을 떨며 우는 킬리와 맛있는거 사달라며 떼쓰는 할아버지를 동시에 상대해야 했음. 또래들보다 조숙한 필리지만 그 역시도 어린 애일 뿐이라 이런 일들이 너무 힘들었음. 이럴때 엄마라도 있었으면. 남자들에게 끌려가기 전 엄마는 필리에게 킬리를 부탁했음. 필리 너는 할수 있다고. 그런데 엄마 나 너무 힘들어. 필리는 할아버지께 드릴 사탕을 사러가다 길가에 서서 울어버렸음.


다음날 날이 밝고 울다 지쳐 잠든 필리와 킬리는 학교를 갔음. 소린은 무슨일이 있어도 조카들이 학교를 빠지는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둘은 삼촌을 찾아 돌아다닐 새도 없이 학교로 갔고, 그 사이에 소린은 아픈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음. 그날 울다 다시 펄펄 앓고 닷새째 되는 날 아침 완전하게 눈을 뜬 소린은 역시나 조용한 방에서 혼자 눈을 떴음. 링겔은 제거되어 있었고 화대봉투 옆엔 깨끗한 새 옷이 놓여져 있었음. 소린은 꾸물꾸물 일어나 옷을 입고 돈을 챙겨 저택을 빠져나왔음. 비틀거리며 길을 걷고 버스를 타고 또다시 걸어 반지하 단칸방으로 들어갔음. 조카들은 학교에 갔으니 있을리 스라인은 방구석에서 사탕을 까먹고 있었음. 소린은 너무 지쳐 옷도 벗을 생각 못한 채 그대로 구석에 주저앉았음. 아들이 온것도 모르고 행복한 모습으로 사탕을 까먹고 있는 모습에 소린은 울컥했음. 아버지. 소린의 부름에도 스라인은 돌아보지 않았고 소린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음. 

"왜그랬어요 아버지? 무슨 영광을 얻으려고 무리하게 확장하셨던 거예요? 그 덕에.. 제가 무슨꼴을 당하고 있는지 아세요? 아버지.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하는 디스가 목을 멘 건 아세요? 프레린이 실종된건 아시냐구요.. 저 여태 아버지 존경했는데.. 지금은.. 너무 싫어요 진짜.. 싫어요.."

울음에 섞여 우물우물 내뱉는 소린의 말에 스라인은 사탕을 오독이다 멈추고 소린을 바라봤음. 그토록 좋아하는 사탕을 뱉어서 종이로 꼭꼭 싸고는 소린에게 엉금엉금 다가갔음. 소린은 눈을 깜빡이며 아버지의 행동을 쳐다봤고 스라인은 끈적한손으로 소린의 얼굴을 닦아줬음. "미안해." 늙고 병든 아버지가 소린을 달래기 시작했음. "미안해. 미안해." 소린은 놀라 눈을 크게 떴고 스라인은 눈물을 닦아주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다 소린을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줬음. 소린은 그 품에서 몸을 떨며 울었음.


필리는 그날따라 예감이 몹시 좋지 않았음. 하루종일 뭔가가 굉장히 찝찝했고 기분이 나빴어. 나쁜 꿈을 꾼것도 아닌데 뒷맛이 영 찝찝해 하루종일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더니 친구들이 무슨일이 있느냐며 물었음. 왠만해선 웃는 얼굴인 필리가 찡그리고 있으니 이유가 있을테니까. 하지만 아무 이유는 없었고 단지 킬리가 매우 신경쓰였음. 요새들어 킬리는 얼굴에 멍자국 등을 내오곤 했음. 그게 뭘 뜻하는건진 아주 확실했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거. 오후가 되고 한 학년 아래인 킬리는 먼저 수업이 끝나 집에 가야 하는 시간이었음. 우루루 쏟아져나온 1학년생들 사이로 덩치 큰 놈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듯한 모습의 킬리가 보였음. 쉬는시간이라 복도에 나와있던 필리는 그 모습을 보곤 앞뒤 재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음. 운동장으로 달려갔을때 그놈들은 이미 사라져있었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는 소리가 온 사방에 퍼져나갔음. 필리는 교실로 돌아가지 않고 교문 밖으로 달려나갔음.


킬리는 맞은 몸이 숨도 못쉴정도로 고통스러웠음. 예전부터 아니꼽게 보던 놈들이었는데 이젠 아주 물만난듯이 킬리를 괴롭혀대고 있었음. 교내에서의 폭력과 모멸감은 어느정도 참을수 있었지만 이렇게 무차별적인 폭력은 맘에들지 않았음. 맞을때마다 발딱발딱 일어나서 달려들었지만 일단 세명이나 되다보니 상대가 되지 못했음. 킬리도 싸움과 맷집이라면 지지 않았는데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어. 몸을 둥글게 말고 허덕이는 킬리의 멱살을 잡더니 바닥에 내치고는 교복을 벗기기 시작함. 재수없는 킬리놈이 실은 오메가라는 말에 회가 동한거. 살면서 오메가를 처음 보기도 했고 신기하니까 덮치고 보려는거지. "오메가라는게 그렇게 천박하다며? 막 뒤에서 액 줄줄 싸면서 박아달라고 한다던데 너도 어서 해봐." 이놈들의 의도를 알아챈 킬리는 몸이 굳어버렸음. 너무 무서워서 몸을 덜덜 떠는데 도망갈 생각을 못하는거. 다가올수록 뒤로 몸을 빼는데 골목이라 도망갈 데가 없는거야. 교복 자켓을 잡아 벗기고 조끼를 쭈욱 찢어버렸는데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머리를 잡아 바닥에 몇번 패대기 쳤음. 충격에 축 늘어지자 이때다 하며 바지벨트를 마저 벗기려는데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나며 한놈이 비명을 지르고 나뒹굴었음. 옷을 벗기던 놈이 뒤를 돌아보니 필리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쓰러진 놈을 발로 몇대 더 팼음. 평소 그놈들은 저들과 달리 덩치와 키가 작은 필리를 보고 무시했는데 오.. 패는거 보니 장난아닌거야. 한두번 패본 솜씨가 아니란거. 놀란 나머지 두놈은 우물쭈물 하다 필리에게 겨우 달려들었는데 보기좋게 발렸음. 얻어맞기는 필리가 더 많이 맞았는데 나중에 정신차린 킬리까지 합세해서 세놈을 아주 두들겨 패놨음.


그 일로 필리는 다른 세놈과 함께 정학을 받았고 킬리는 퇴학당했음. 킬리는 퇴학이란 소리를 듣고 기절할정도로 울며불며 빌었지만 소용없었음. 안그래도 교내에 오메가가 있다는것 자체로도 껄끄러웠는데 이 폭력사건이 저 오메가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저 아이가 계속 학교에 있으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퇴학을 권고하는거야. 핸드폰이 없는 소린은 필리에게 직접 전해들어서야 그 소식을 알 수 있었음. 담임을 찾아가 제발 학교만은 졸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음. 노란 곱슬에 체구가 아담한 담임은 커다란 소린을 보며 제법 위축됨을 느꼈음. 하지만 그가 곧 무릎을 꿇고 애처롭게 빌어오자 그 큰 덩치가 세상에서 가장 작아보일수 있음을 알게되었음. "배긴스 선생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담임은 힘이 약했고 그저 죄송하다는 말 밖엔 전해줄게 없었음.


소린은 교문앞에 서서 모든짐을 다 싸고 나오는 킬리를 기다리고 있었음. 눈코가 빨개져서 울며 나오는 어린 조카를 끌어안아 주는것 밖에 할 수 없었음. 학교는 ㄱㄱ당할뻔한 아이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대신 내쫒는 길을 택했음. 소린은 말없이 분노했음.


킬리가 퇴학당한 날. 소린은 모처럼 아이들에게 맛있는걸 사줬음. 됐다고 부득불 말렸지만 삼촌 돈 생겨서 괜찮다고 평소 필킬리가 좋아하는 음식점으로 데려갔음. 셋의 운명이 이렇게 되기 전. 아이들 엄마인 디스와 넷이 자주 왔던 식당이었음. 4인 자리에 앉았지만 한사람의 자리는 텅 비어있었음. 아이들이 엄마생각에 우울해지는걸 방지하려고 소린은 재밌는 얘기를 시작했음. 옛날에 여행을 다니면서 겪었던 일들로 분위기를 띄워도 아이들은 밝아지지 않았음. 뻘해진 소린은 입을 다물었고 세 사람은 침묵속에서 밥을 먹었음. 밥을 다 먹고 밖으로 나오며 소린은 조카들을 말없이 끌어안아줬음. 소린은 간식이라도 사먹고 들어가라며 약간의 용돈을 얹어주고 일하다가 뛰쳐나왔다며 다시 일을 하러 간다 했음. 시간은 저녁이었으나 늘 늦게들어오는 소린이기에 필킬리는 별 의심없이 잘 다녀오시라 배웅했음. 소린은 스란두일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음.


전 날 이른 아침부터 몸을 추스르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 소린은 드왈린의 눈인사를 받으며 복귀했음. 엿새나 쉰 주제에 비틀대며 힘을 못쓰는걸 보고 드왈린은 혀를 찼음. 그렇게 일할거면 돌아가라는 소리에 죄송하다며 정신을 다 잡았고 점심을 먹을때 즈음엔 밥도 안먹고 쓰러지듯 벽에 기대 쉬고 있었음. 정신없이 잠든 소린 위에 긴 그림자가 졌음. 스란두일의 비서  깨지 않는 그를 한참 기다리다 시계를 보더니 쪽지한장을 앞에 남겨두고 돌아갔음. 드왈린의 외침에 깨어난 소린은 눈앞에 보이는 쪽지를 들고 내려가며 읽다 걸음을 멈췄음. 오늘 다시 집으로 오라는 스란두일의 메세지였음. 그날 저녁 저택으로 향하는 걸음걸음마다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음. 너무도 가기 싫고 공포스러웠어. 합의하의 관계였지만 소린은 이 관계를 원치 않았으니 이건 분명한ㄱㄱ이었지. 한참을 우물대다 현관의 벨을 눌렀고 다시 그 커다란 철문이 입을 열었음. 집 안으로 들어갔을때, 스란두일은 소린의 안색을 보고 깜짝놀랐음. 너무 하얗게 질린 채 몸을 떨고 있었음. 알파에게 뭉개졌다는 알파의 본능때문에 소린은 더더욱 스란두일을 두려워하고 있었음. 스란두일은 그런 기색을 읽고 놀랐던 마음을 풀고 피식 웃었음. 소린은 벌벌 떨면서도 눈에 힘을 주고 스란두일을 쏘아봤음. "무, 무슨일로 날 부른건가?" "무슨일이긴. 하던 일 계속 해야지." 스란두일은 손을 까딱거려 약통을 가져오게 했음. 소린을 오메가로 만들어놓았던 그 약. 그 약이 눈 앞에 다시 놓이자 소린은 뒷걸음질을 쳤음. "새삼 왜그래? 그 일이 한 번으로 끝날줄 알았어?"


조카들을 집에 보내고 나서 일이 있다고, 삼촌 요새 바쁘다고 웃으며 뒤돌았지만 진심 혀를 깨물고 싶었음. 또다시 스란두일의 앞에서 약을 먹고 능욕을 당해야 한다는 절망감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음. 정말이지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킬리가 퇴학을 당하자 소린은 더 이상 선택권이 없었음. 눈 딱 감고 하는거다. 한번만 몸을 내주면 10억달러가 들어와. 이번 한번만 참자. 이번 한번만. 소린은 속으로 이번 한번만 참자는 다짐을 되씹으며 멍하게 저택으로 향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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