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가 긴 수술을 끝내고 회복실에 들어간지 며칠이 지났을때 토니는 스티브에게 필요한 짐을 가지러 그의 집을 방문했어. 낡은 아파트 안에는 정말 필요한 가구들만 놓여 있어서 썰렁하기 그지 없었음. 천천히 방을 돌며 이것저것 뒤져봤지만 딱히 필요할만한 짐은 없었고 책상 서랍속에 노트 하나와 파일 하나가 들어있었어. 파일 안엔 스티브의 코만도즈와 페기, 하워드, 자신의 신상명세가 적힌 종이들이 들어있었고 노트에는 이런저런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어. 혼자 얼마나 그림을 그렸으면 귀퉁이가 닳아 있었고 얇은 종이들이 연필에 눌린 자극으로 부풀어 있었어. 공교롭게도 토니는 끝에서부터 펼쳐봤는데 그 안에는 토니의 모습이 잔뜩 그려져 있었어. 고개를 돌린 모습, 뭔가를 하는 모습 등등. 


스티브의 선은 유려하면서도 소박했고, 그 선들이 이어져 토니 스타크를 그려내고 있었어. 토니는 노트 안에 가득 담긴 자신의 모습을 하나하나 넘겨보았는데 뒤로 갈 수록 옛날 시대에 볼 법한 스타일의 인물들이 등장했고 거의 마지막이 되자 좀전에 파일에서 봤던 인물들이 나타났어. 인물들을 그린 그림 옆에는 그들의 이름이 빼곡히 씌어 있었고 종이가 젖었는지 울어있었어. 젖은 자국은 눈물자국으로 보이는 듯 해. 귀퉁이에 쓰인 보고싶다는 문구를 스쳐 페이지를 넘겼어. 드디어 펼친 마지막장엔 거리에 서 있는 어느 부부와 꼬마 아이가 손을 잡은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어. 순서상으로 보면 제일 첫 그림인거 같아. 그냥 뉴욕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부모와 아이의 뒷모습일 뿐인데 토니는 그걸 보고 참고 있던 눈물이 나왔어. 70년이 지난 세상에서 눈을 뜨고 처음 그린 그림. 활기찬 젊은이들이나 귀여운 동물들도 아닌 한 가족의 뒷모습을 그렸을 때의 감정이 전해졌는지 그 그림을 보는 내내 토니의 가슴은 쓸쓸하고 추웠어. 그 들이 처음 시작했을 때, 두 사람은 서로의 외로움에 끌렸던걸 기억해냈어. 지금 혼자 누워있을 텐데. 조금만 기다려. 곁으로 돌아갈게 스티브. 토니가 스티브의 집 현관문을 열자 새카만 어둠만이 집 바깥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어. 토니는 망설임 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닥에 발을 내딛었고 한줄기 빛을 비추고 있는 현관 문을 잡아 닫고는 완전히 그 집에서 빠져나왔어.


스티브는 몸을 움찔 떨며 벌떡 일어났어. 눈이 피곤해서 잠깐 감고 있는다는게 그새 잠들었나봐. 누군가 옮겨놨는지 푹신한 병원 침상에 누워있던 거였음. 토니가 누워있는 무균실 앞을 지킨지 보름이 되었을 때였어. 들어갈 수가 없어서 병실 앞에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면서 서성이고 있다가 잠깐만 쉰다는게 지금의 침대 위야. 얼른 정신을 추스리고 무균실로 가려고 침대에서 내려왔어. 만약 잠들어있을때 토니가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평생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지도 몰라. 허둥지둥 나가려는데 누가 뒤에서 낄낄대며 웃는 소리가 들렸어. 다른이가 입원해있는 병실에 누워있던건가봐. 누군지 몰라도 왜 이런곳에 눕혀놨는지 좀 원망스러웠어. 죄송하다며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려는데 그 움직임을 멈추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왔지.


"나 버리고 어딜 가려는거야?"


이곳에 있어서는 안될 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너무 놀라 얼른 뒤를 돌아봤어. 토르의 빨간 망토를 지나 배너의 난처한듯한 웃음이 보였고 콜슨의 환한 이마()가 눈에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토니가 눈에 들어왔어. 토니는 배가 아파 크게 웃지 못해 끅끅거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스티브가 뛰어들었어. 토니는 순간 엄청난 격통이 온 몸을 휘감았지만 차마 소리를 낼 수 없어서 눈 돌아가게 비명을 참아야만 했음. 스티브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토니의 품에서 덜덜거리며 울었어. 스티브가 이렇게 목놓아 우는건 처음 본 터라 네 사람은 크게 당황했지. 토니는 아무리 울어도 진정 못하는 스티브의 얼굴을 들어올려 달래주기 시작했어.


"스티브. 스티비. 그만 울어. 눈 붓는다."

"토니.. 토니.. 사.. 살아..."

"응. 나 살아있어. 봐봐. 팔다리 잘 붙어있네. 아참. 발목하나는 없어졌지! 잘 됐어. 우리 두 사람 다 하나씩 결핍이네. 이제야 완벽한 커플이 됐군 그래!"


토니는 자기가 한 얘기가 재밌는지 박수를 치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가 순간의 말실수를 깨닫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 나머지 세 사람은 혀를 찼지. 스티브는 그래도 계속 울고 있었는데 방금 전 얘기를 하나도 못알아들었을 거라 믿고 올렸던 팔을 급하게 내려 스티브를 끌어안았어. 그만 울라며 안아서 둥기둥기하는 모습을 보고 토르와 콜슨, 배너는 타이밍 좋게 병실에서 나가줬고 둘 만이 한 공간에 남아있었어. 오래도록 어르고 달랜 덕에 스티브는 가까스로 눈물을 멈췄고 토니는 안도의 웃음을 지었지. 해는 따끈한 오후의 창가를 환하게 비췄고 두 사람은 햇살을 기분좋게 느끼며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어. 서로의 심장소리를 듣고 느끼면서 몸을 더듬다 가벼운 키스가 오간 후 토니가 장난스레 웃었음.


"그러고보니 아직 청혼에 대한 답을 못들은거 같은데."

"..."

"이번에도 거절이야?"

"아니.."

"그럼 허락 한거지?"

"응.."

"좋아. 내가 지상 최대의 웨딩을 보여줄게. 작년부터 계획해두고 있었다고."

"그런거 하지 말게.."

"싫어? 그럼 에어 웨딩쇼는 어때? 당신을 위한 특수 웨딩 수트를 제작할거야. 걱정마. 얼마 안걸린다고."

"하지 말게.."


토니는 계속해서 말도 안되는 웨딩계획을 늘어놓았고 스티브는 말리느라 진땀을 뺐어. 토니가 눈을 뜬지 이틀만의 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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