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프렉, 수간, 윤간, 고문
거란족이 세력을 규합하여 명나라와 조선의 사이, 머나먼 옛날의 발해지역쪽으로 터전을 잡기 시작했다. 명나라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즉시 거란족의 연합을 규탄하려 하나 실패하였다. 연해주를 시작으로 명나라를 차츰 갉아 먹고 있는 것을 본 주상께서는 그들이 명 부터 접수하고 쳐들어올 것을 직감하신다. 거란족에게 명나라의 천자가 주살당하자 전하께서는 북방에 몇몇 수비들만 남기고 백성들과 대군, 공주들을 모두 남쪽지방으로 보내라 하교하시었다. 이로서 도성 안, 궐내엔 수비대들과 궁인들, 무휼 그리고 주상만 남게 되었다.
명의 천자를 주살하고 스스로 천자의 자리에 오른 이를 황제라 칭하자. 황제는 거란족들의 나라를 건설하고 나라의 이름을 '이' 라 칭한 후에 예부터 명에 조공을 바치던 조선으로 눈길을 돌린다. 이나라의 제도를 정비한 황제는 조선의 원정에 직접 출정을 하였다. 국경부터 몇몇 병사만 있을 뿐 아무도 없는 것을 수상하게 여겼으나 경계심을 풀지 아니하고 밑으로 남하한 즉, 보름이 조금 넘는 시간을 걸어 경복궁에 도달하였다. 정문을 지나 근정전에 이르자 주상께서 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본다. 다들 갑옷도 입지 아니하고 평소에 입던 비단옷만 입고 있는 모습을 보자 황제는 한 나라의 왕이란 사람이 자신의 나라에 쳐들어온 오랑캐들과 쟁투 한번 하지 아니하고 항복을 하려 드는 것이냐 하며 비소를 터뜨렸다. 그 말에 주상께선 그저 웃으시는지라. 우리 조선은 그대들을 객으로 맞이하고 있소이다. 갑주조차 입지 아니한 채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은 우리들을 무력으로 치려는 것이오? 그 말에 황제는 장수들로 하여금 호위무들을 죽이고 조선의 왕을 겁박하려 생각했던 것을 멈추는 것이다. 실로 머리가 좋은 자가 아니던가. 무방비 상태의 조선을 이대로 치게 되면 이나라는 명분을 챙기지 못하게 된다. 좋다. 네 뜻이 그러하면 장수들을 내보내어 승부를 가려보자. 너희 조선에 백인의 무사를 홀로 대적할 수 있다는 제일검이 있다 들었다. 내보내어라.
주상께서는 근심하시나 무휼은 슬몃 웃고는 어좌 옆을 떠나 근정전 앞마당으로 내려오는지라. 황제는 자신이 아끼는 강한 장군을 내보내었으나 열합을 넘기지 못하고 무휼에게 죽었다. 황제가 당혹을 금치 못하자 다른 장수 둘이 나가 승부를 내어 보려 하지만 금세 죽었다. 많은 적들을 눈앞에 둔 무휼은 언제까지 저들을 상대해야 할지 몰라 상대를 한번에 즉살시키기 위하여 최소한으로 움직여야 했다. 무휼이 황제를 노려보자 그에 격분한 몇이 더 뛰어나왔으나 그들을 한 합으로 제압하고 앞으로 뛰어갔다. 황제에게 검을 들이밀 기세로 나아가다 주상께서 이제 그만하라 이르고는 황제에게 무릎을 꿇었다. 지엄하신 이국의 천자시여. 우리는 그대들에게 졌소. 뒤에서는 궁인들과 호위무사들이 통곡을 하기 이르렀고 무휼 또한 칼을 거두고 부복하였다.
황제는 무휼의 무공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였고 주상의 기세에 탄복하여 이르기를, 이 조그마한 조선의 왕으로 그치지 말고 짐과 함께 함이 어떠하뇨. 내 그대를 주요 공직에 앉힐 것이다 하나, 주상께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소신은 조선의 왕으로 남기를 청합니다 하시었다. 그 뜻이 완고하여 황제는 차마 더 이상 권하지 못한 채 군신관계의 조약만 맺고 물러갔으나 무휼이 걸렸다. 조용히 노려보던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으니, 이나라의 도읍으로 돌아간 황제는 무휼에게 감히 천자에게 칼을 들이밀려 했다는 대역죄를 씌워 이나라로 압송할것을 하교하였다. 어찌하여 그 하교를 지금에서야 내리시나이까 하고 묻자 황제가 턱을 쓸며 말하기를, 짐이 곰곰이 생각하였는데 그 같은 자가 조선에 있어서는 아니된다. 훗날 우리 이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 하였다.
그 하교를 들은 주상께선 크게 진노하시었다. 그러나 상대는 이국의 천자라. 진노를 표출하지 못하시며 어좌 끝을 잡고 있는 옥수를 떠시는지라. 천자시여. 어찌 이런 하교를 내리시나이까. 주상께서는 탄식하시나 무휼은 담담하였다. 과인의 실책이다. 너를 이리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다 하시며 무휼을 바라보매 무휼은 잠잠히 웃을 뿐이었다. 전하께오선 명백히 최선을 다 하셨나이다. 신을 버리시고 만백성을 구하셨으니 어찌 성군이 아니시겠나이까. 소신은 즐거이 오라를 받겠나이다.
다음날 해가 뜨자 이국의 사신들은 급히 무휼을 옭아매려 하였다. 이에 무휼은 잠시만 기다려달라 청하고 주상께서 서 계시는 근정전 앞에 다다랐다. 무휼의 얼굴은 평안하였다. 전하. 소신은 조선을 떠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옵니다. 네 떠나기 전 청이 있느냐. 다른것은 없사옵고, 이듬해부터 다른 이를 시켜 소신의 제를 올려주셨으면 하옵니다. 사신들이 무휼을 재촉하매 주상의 용안을 뵈오며 절을 세차례 하였다. 전하. 부디 옥체를 보전하시어 만세토록 강녕하소서. 주상께서는 경복궁을 빠져나가는 행렬을 안타까이 바라보시었다.
그 날 이후로 주상께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북쪽을 바라보시매 내관이 어이하여 북쪽을 바라보시냐 묻자 무휼이 어디까지 갔을까 궁금하여 그리 하였다 하시니라. 진실로 이듬 해 부터 제를 지내줘야 하느냐 하문하시어 마땅히 그리하셔야 하노라 답하였다. 오호 통재라. 오랜 친우를 잃으신 슬픔에 성상의 옥루가 만리에 흩어져 헤매이는구나.
몇날을 걸어 압록강에 당도한 무휼은 잠시간 남쪽을 바라보는지라. 우리 임금님 외로우지 않으셔야 하며 밤마다 소신을 찾지 마셔야 할텐데. 임금이시여 부디 허공에 소신의 이름을 부르며 허탈해하지 마소서. 남쪽을 향한 시선을 차마 떼지를 못하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북경에 당도하기가 무섭게 추국을 받으며 기력이 쇠하는지라. 겨우 눈을 뜬채로 앞을 바라보니 이국의 황제가 눈앞에 자리했다. 황좌에 앉아 밝디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황제는 금년 30세요 덩치는 태산같으며 목소리 또한 우뢰같으니, 가히 거란족을 이끌어 명을 퇴락시킨 수장 답더라. 그러나 찰나의 부드러움으로 앞에 무릎 꿇은 무휼을 가만히 다독이며 타이르는 것이다. 무휼 그대를 이곳에 데려옴은 짐이 그대를 심히 탐내기 때문이다. 감히 짐에게 칼을 겨누려 한 것은 마땅히 대역죄이며 이 자리에서 당장 참하여 효수를 해도 시원치 않으나 그러지 아니하려 한다. 조선땅을 떠난 그대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니, 짐과 함게 함이 어떠하뇨. 그 말에 무휼은 헛헛하게 웃는 것이다. 겨우 그런 말을 하자고 소신을 이곳까지 끌고 오신 것이니이까. 지금 당장 베소서. 조선의 임금은 가지지 못하였으나 내 그대는 반드시 옆에 두고 싶느니라. 하늘아래 이군을 섬길 수는 없는 노릇이오. 계속되는 설득에도 무휼은 요지부동인지라. 황제는 드디어 역정을 내었다. 저 괘씸한 것을 어찌해야 할꼬. 다시는 무사로서 일어날 수 없도록 고신하며 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기백을 꺾으라. 무휼은 무사로 죽을 수 있게 해달라 간청하였으나 황제는 듣지 아니하였다.
그날 이후로는 가히 지옥이라 할 만큼의 고통이 뒤따랐다. 고신하는 자들은 인정사정 없이 몽둥이로 후려치고 인두로 달구는지라. 그러나 무휼은 조금의 비명도 지르지 아니하고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그들을 노려본다. 너희들은 나를 꺾을수 없을 것이다. 조선이 제 아무리 소국이라 한 들 그 안에 사는 이들 까지 소인배이지는 않는다. 나는 조선의 사람이며 죽는 날 까지 조선의 임금을 섬길 것이다. 그들은 무휼의 기백에 질려가고 있었다. 아무리 꺾어도 꺾이질 않는 사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곤란해 하고 있을때 장군 하나가 납시었다. 고신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너희들이 그러고도 고문관이라 할 수 있겠느냐. 장군은 무휼을 바닥에 눕히고 양쪽으로 팔을 짓누르라 일렀다. 모두가 영문을 모르매 장군이 직접 두꺼운 쇠몽둥이를 든 채로 손목을 향해 내려치는지라. 피가 튀고 살이 찢기매 무휼은 기가 막히었다. 놀람과 고통에 온몸을 뒤틀며 울부짖는 것이다. 이제야 네놈이 눈물을 보이는 구나. 그렇게 두 눈을 부릅 뜨고 네놈 손목이 작살나는 꼴을 보아라. 너는 이제 무사로서의 생명을 잃었다. 소감이 어떠하냐. 무휼은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제 생명이 끊기는 것과 같은 고통이 가슴에도 일어났다. 아아 전하. 소신 정말로 죽습니다. 무사로서의 무휼은 죽었사옵니다. 한평생 무사로 살아온 무휼의 자존심과 생명이 너덜거리는 손목끝에서 숨을 거뒀다. 가엾은 무휼은 몇날 밤을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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