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빈. 원래는 니트가 아니었는데 이유모를 환상통과 요상한 꿈을 꾸게 되면서 회사를 퇴직하고 니트가 되어버림. 운이 좋은 편이라 몸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빠칭코에서 돈을 좀 터뜨린다던가 소소한 이벤트 당첨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음. 원래 온화한 성격이었던 엘빈은 그 이상한 꿈을 간간히 꾸고 나서부터 성격이 거칠어졌는데, 자신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검은 머리의 작은 남자를 보면 화가 나서 미칠것 같은거. 꿈 속의 그는 엘빈에게 죽으라 종용했고, 그 말을 듣고 깬 날은 오른쪽 팔과 왼쪽 옆구리에 심한 환상통이 와 이삼일은 거동을 못함. 처음 그를 본 날은 이유모를 가슴아픔과 애틋함이 있었는데 이제는 증오밖에 남지 않았겠지. 누구야. 네놈은 누군데 날 이렇게 고통스럽게 해. 꿈 속에서라도 죽이고 싶은데 영상을 구간 반복하는 것 처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말 만을 반복할 뿐이었음. 꿈을 포기하고 죽어줘. 나는- 넌 살았겠지. 비겁하게 날죽으라 떠밀고 네놈은 살았겠지. 뒷 얘기는 구차한 변명일 뿐일거야. 네놈은 그런 놈일테니까. 환상통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엘빈은 담뱃재가 수북한 재떨이를 창문을 향해 집어던졌음. 와장창 소리와 비명소리가 함께 들렸고 놀란 엘빈은 신발도 못챙겨 신고 밑으로 내려갔는데, 매번 자신을 괴롭히고 오늘 꿈에서도 날 괴롭힌 악의 화신, 그 검은 머리가 머리를 감싸쥔 채 눈 앞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거. 어? 엘빈은 상대방의 안부를 물으려다 눈물이 그렁 고인 그 날카로운 눈매를 보고 입을 다물었지. 그리고 순간 머리채를 잡고 집으로 끌고 가겠다. 검은 머리 남자는 영문도 모른 채 거한에게 끌려가 바닥에 패대기쳐 졌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하며 화를 내려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눈이 무너져 내리겠지. 후줄근한 티셔츠에 부스스한 머리. 부숭한 수염. 살이 내린 수척한 얼굴에 특이한 눈썹. 바다를 닮은 파란 눈.
엘빈.
너. 나를 아는구나?
남자의 날카로운 눈이 한순간에 공포와 슬픔, 놀람으로 뒤섞여 버렸다.
엘빈.
찢어진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건 이미 잊었는지 냅다 손을 뻗다가 다시 갈무리해 제 두 손을 꽉 쥔다.
너. 꿈속에서 내게 죽으라 했지? 왜? 왜야? 왜 날 사지로 떠밀어서 날 죽인거냐고!
꿈? 남자는 그 한마디를 남긴 후 몸을 부르르 떨며 울었다. 날 원망했구나. 널 살려주지 못해서. 나는 널 지옥에서 해방시켜 준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다니. 소리도 못 낸 채 끄윽거리며 울더니 기어이 네 발로 기어와 엘빈의 발등에 키스를 했다. 발등에 떨어지는 차가운 눈물과 비린 피의 감촉.
난 너를 찾아 헤매던 중이었어 엘빈. 네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서. 만약 네가 이 세계에 존재한다면 어디가 좋을까 싶어 이 근방을 지나고 있었는데..여기 살고 있었구나. 다행이야.
남자는 눈물을 떨구며 웃었다. 미친놈인가 싶었지만 매 꿈마다 매서운 얼굴이었던 그가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마음이 간질였다. 화 로만 가득했던 마음이 평안해졌다. 왜지. 이 자의 존재는 내게 어떤 의미길래.
저.. 그.. 다친곳은?
아.. 괜, 괜찮..
아, 아참 머리채 잡고 끌고 온거 미안..
아냐. 널 찾았으니 됐어.
아 근데.. 난 당신 이름... 잘 모르는데. 미안. 얼굴만 보고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
리바이.
엘빈의 커다란 손이 자그마한 남자의 얼굴에 닿았다. 커다란 파열음이 들리며 남자는 말 그대로 벽에 쳐박히고 말았는데. 이 빌어먹을 통증, 이 통증이 널 보고나면 시작돼! 네가 나에게 죽으라고 종용하면! 나는!! 소리를 지르던 엘빈은 며칠을 식사도 않고 앓았기에 그만 지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엘빈.
검은머리의 남자는 비척거리며 다가온다. 종전보다 더 흘러나온 피. 상체게가 온통 피로 젖어있다.
엘..엘빈. 괜찮아?
맞은 충격에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너는 너의 상태보다 나를 걱정한다. 너는 뭐지? 날 죽음으로 내 몬 사신이 아니었나? 네가 뭔데 날 걱정해?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쉰 채 노려보았다.
내 기억속의 넌 왜 날 죽음으로 내몰았지?
....
말을 잃은 채 다가오던 몸을 멈추었다.
꿈? 아까는 꿈이라 했지만 이건 꿈이 아니다. 이건 무언가의 기억이었다. 어떤 미친 꿈이 구간 반복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냐고.
너의 뜻이었으니까.
내가? 넌 짊어진 짐이 너무 많았어. 그걸 해방시키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내던진거다.
미친소리 하는군. 내가 자살을 하러 갔단 말야?
난 말렸어. 말렸는데..
말렸다고? 꿈을 포기하고 죽어라, 이 말 밖에 안하던데?
...
이젠 변명도 하지 않는군? 아, 그래. 알았어. 이제 가봐. 아, 내가 던진 재떨이에 머리 맞았지. 자. 치료비. 아, 내가 때리기도 했지. 경찰서에 폭행죄로 신고해. 합의금은 못줘. 빈털털이라. 꾸준히 콩밥 먹는것도 나쁘진 않겠네.
엘빈.
가. 미안해. 가.
엘빈..
가!
미안해. 검은 머리의 남자는 비척비척 일어나 현관을 나섰다. 돈은 가져가지 않았다. 그 남자를 만난 후로 빌어먹을 꿈은 더 이상 꾸지 않았고 환상통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모든것을 기억해냈다. 리바이는 그 후로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