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 소린의 기구한 인생 6
필리와 킬리는 자라며 점점 용모가 수려해졌다. 청색산맥의 여인들은 두 청년을 보며 마음을 졸였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부지기수였다. 수려한 용모와 활달한 성격에 사고를 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청색산맥의 주민들은 모두 그들을 좋아했다. 소린은 잘 자라준 조카들을 보며 알게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매일이 행복했다. 비록 동생부부의 목숨과 맞바꾼 행복이긴 하나 이 순간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앞에서 예쁘게 웃는 조카와 아들의 모습은 매일을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각자의 재주가 있었다. 필리는 외모에서 보이는 부드러움을 십분 이용해 사람들을 휘어잡을 줄 알았다. 가르친 적이 없어도 천성적으로 리더쉽이 있었으며 그렇게 모은 무리를 어떻게 이끌지 잘 알고 있었다. 킬리는 몸이 날랬다. 호리호리하고 가벼운 몸으로 어릴때부터 담장을 잘 타고 넘더니 높은 곳을 뛰어넘길 잘 했다. 끈기가 있고 힘이 셌다. 목표물을 하나 정하면 죽자고 달려들었다. 소린은 딱히 누구를 후계로 정할지 생각해놓지는 않았지만 모든 이들이 필리를 소린의 후계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 기대들에 힘입어 필리는 자연스레 소린의 후계가 되었고 킬리는 필리의 호위를 맡았다.
청색산맥은 그렇게 위험한 지대가 아니다보니 킬리가 나설 일이 좀처럼 없어서 평소대로 활발하게 뛰어다녔다. 그렇게 뛰어다니다 가끔은 아무말 없이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곤 했다. 킬리가 처음 나갔다 돌아온 날, 소린은 행여 하나뿐인 아들이 잘못될까 두려워 호되게 혼을 냈었다. 돌아온 답은 이곳을 벗어나 생각할 것이 있었다는 것 뿐이었다. 어딘가 기운없어 보이는 모습에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 킬리는 가끔씩 알수 없는 눈으로 소린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이끌려 눈을 마주치면 킬리는 그저 웃었다.
"무얼 보고 그리 웃느냐?"
"아무것도 아니예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얼굴은 할 말이 가득해 보였다. 데려다 앉혀놓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보면 안될것만 같았다. 소린은 지금이 좋았다. 그는 정말로 이 행복을 깨고 싶지 않았다.
세월이 더 흘러 청색산맥은 하나의 드워프 왕국으로 성장했다. 소린의 탐스러운 검은 머리가 희끗해지고 필리와 킬리의 턱에 수염이 좀 더 자랐을 때. 오인은 에레보르로 돌아갈 때가 다가왔다며 소린을 찾아왔다. 처음엔 반대를 했다. 스마우그를 해치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며 청색산맥에서의 삶은 순탄했다. 모두가 다시금 시작된 종족의 번영에 감사했다. 그러한 마당에 에레보르로 돌아가다니. 말도 안되는 짓이라 단언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다른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에레보르의 왕궁. 소린과, 아버지 스라인과, 할아버지 스로르가 태어나 살았던 곳. 그리고 그곳의 막대한 황금. 에레보르를 되찾아야 한다는 말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소린은 잠시 생각할 것이 있다며 청색산맥을 떠났다. 그리고 달리는 조랑말 여관에서 간달프를 만났다. 마침 그는 스마우그를 해치울 궁리를 고민중이었고 소린의 이와 맞아 간달프가 소린의 여정을 지원키로 했다. 결심을 갖고 청색산맥으로 돌아간 소린은 그의 결심을 발린과 드왈린, 오인에게 알렸다. 드왈린은 반박하려 했으나 참았고, 발린과 오인은 인원을 충원하고 여정을 꾸리겠다 각자 나섰다. 소린은 이것이 잘 한 짓인지 헷갈렸다.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가기 싫었다. 그의 가슴 한쪽에서는 무엇하러 이 평화로운 곳을 뒤로한 채 그 위험한 모험을 해야하느냐며 속삭였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선조의 터전인 에레보르를 되찾는것도 중요한 과업이라 생각했다. 단순한 선조의 터전을 되찾는것이 아닌, 두린가 드워프들의 명예를 되찾는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필리와 킬리에게 그들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찬란한 에레보르를 물려주고 싶었다. 곧 에레보르를 되찾는 여정이 시작될것이고 너희는 이곳에서 소식을 기다리라 이야기 했을때 두 젊은 드워프는 조용히 반박을 했다.
"저희도 갑니다."
"안된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갈겁니다 소린. 비록 평화로운 청색산맥이나 저희는 전사로 자랐습니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소린은 그들이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란걸 잘 알았다. 누구보다 먼저 에레보르를 보여주고 싶었으나 누구보다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이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필리는 비록 후계이긴 하나 지지기반이 미약했다. 만에하나 소린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필리는 물론이고 킬리까지 위험해 질 수도 있었다. 소린은 어렵게 그들의 동행을 허가했다.
여정을 떠나기 전날 밤. 소린은 잠든 아이들의 방을 늦도록 떠나지 못했다. 자식같이 키워온 필리, 그리고 정말 자식인 킬리. 동행을 허가한 것이 정말로 잘 한 것인지 자꾸만 되씹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엔 늦었으니 이들의 앞날에 축복만이 가득하길 빌었다. 방에서 나가려던 찰나 킬리가 어느틈엔가 잠에서 깨 소린에게 머리를 쓰다듬어달라 칭얼거렸다. 다 큰 놈이 칭얼댄다 핀잔을 했지만 어쩔수 없다는 듯 쓰다듬어주었다. 기분이 좋은듯 한숨을 쉬며 소린의 허리에 팔을 둘러 끌어안았다.
"소린. 전요, 이상하게 어릴때부터 엄마 품 보다는 소린의 품이 더 좋았어요. 넓어서 그런가 소린 품에 안겨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러하냐. 그래. 네 말 대로인것 같다. 디스보다는 내가 더 품이 크지."
약간 뜸을 들였지만 목소리를 평소와 다름없이 내려 노력을 했다. 놀란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어서 자라 채근하고는 서둘러 방을 나왔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