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 소린의 기구한 인생 3
임신이란 사실을 깨닫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곁에 있던 발린이 부축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을 것이다. 안색이 새파래진 것을 보며 놀라 의사를 부르려 했으나 이내 소린에게 제지당했다. 어서 의사에게 보여야 한다 다그치는 발린에게 사실대로 고하고 말았다. 임신을 했다. 그런데 아이 아버지가 디스의 남편이라고. 무슨짓을 한 것이냐 다그치는 발린에게 그간의 일을 또다시 설명했다. 이야기를 하며 소린은 떨고 있었다. 아직 아이 아버지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했다. 너무나 놀라운 사실에 발린은 떨고있는 소린을 달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마시라며 뒤돌아 나갔고 소린은 그 공간에 혼자 남았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하루종일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저 침대에 누워 배에 손을 얹은 채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근친은 근친이되 피가 섞이지 않은 근친이며 부정의 결과물이다. 아직은 혼란한 시기이기에 왕가에 이런 부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두린왕가를 끌어낼 수도 있었다.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닌 디스와 필리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 아이를 어찌 해야 하는 것인가. 부정의 싹을 잘라야 하건만 아직 제대로 형태조차 갖추지 못한 아기에게 모성을 느꼈다. 소린의 첫 피붙이였고 소린만의 가족이었다. 차마 지울수가 없었다.
식사도 하러 오지 않는 소린이 걱정되어 데리러 왔던 매제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는 눈만 커다랗게 뜬 채 소린을 바라보았다. 제 오메가가 임신을 하게 되어 기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소린은 매형이다. 조심스럽게 지울수 없느냐 물었지만 소린은 강하게 거부했다. 아이에 관해서는 오메가의 본능이 더 앞서 있어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매제는 한숨을 쉬며 이 사실을 디스에게 어떻게 알릴지 상의를 했다. 다음 날 푼딘의 형제들과 디스가 두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임신사실을 이야기 했다. 고요하게 침묵하던 디스는 체념한듯 웃었고 오라버니의 위신을 생각해 오라비의 자식을 내 아이라 공표할 것이라 했다. 말은 부드럽게 했으나 아이를 빼앗겠다는 소리와 다를바 없었다. 매제는 발언권이 없었고 소린은 한참의 침묵 후에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디스는 만인에게 둘째아이를 가졌다 일렀고 모두의 축복을 받았다. 그 축복은 원래 소린의 것이어야 했으나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 지 못했다.
얼마 후 드왈린과 소린, 디스와 필리는 청색산맥을 떠났다. 명분은 타 지역과의 물자교류를 위함이었다.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했다. 디스는 잠이 든 필리를 등에 업고 떠났다. 소린이 없는 동안 발린이 섭정이 되었다. 명목상이긴 하나 정말로 소린은 배가 부른 상태로 타 지역의 우두머리들과 회의를 갖고 물자를 확보했다. 발린은 청색산맥으로 도착하는 물자들을 보며 가신들과 회의를 하고 물자를 배분했다.
소린이 떠난지 2년이 지났다. 발린의 섭정은 꽤나 뛰어나 소린이 닦아놓은 기틀에 더욱 좋은것들을 얹어가고 있었다. 드왈린에게 마지막으로 온 편지 속엔 소린의 몸조리가 끝나가므로 곧 청색산맥에 도착할 것이라 이르고 있었다. 소린이 낳은 아이는 짙은 갈색 머리의 건강한 사내 아이며 이름은 킬리. 소린을 많이 닮았다 했다.
"킬리라.."
발린은 조금 웃었고 조금 찡그렸다. 그토록 아이를 원했고 고생하며 낳았지만 내가 너를 낳았다고 평생을 말하지 못할 소린과 제 오라비와 남편 사이의 아이를 기르게 될 디스를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발린은 그만 킬리라는 아이가 보고싶지 않다 생각했다.
발린은 킬리를 처음 본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디스의 품에 안긴 채 까만눈을 도록도록 굴리다 눈이 마주치자 까르르 웃었다. 붙임성이 좋은 아기였다. 떠난 날보다 조금 더 자라 제법 잘 걸을 수 있게 된 필리는 제 동생을 예쁘다며 좋아했다. 청색산맥의 주민들은 돌아온 소린일행을 맞이하며 디스와 킬리에게 축복을 내렸다. 두린의 피를 이어받은 너무나 예쁜 아이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디스는 입에 경련이 일 정도로 웃었고 소린은 디스의 품에 안긴 킬리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