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으로 끌려간 무휼 2
무휼이 한풀 꺾였다는 말에 황제는 기뻐하는지라. 하지만 애초 그를 탐하였던 것이 출중한 무공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무공을 쓸 수 없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한다. 다시 조선으로 돌려보낼까 생각을 거듭하다 발길이 고신장소로 향하는 것이다. 누워있는 무휼을 보니 가히 풀이 꺾여보이는지라. 내관들이 억지로 일으켜 무릎을 꿇려놓으니 마치 사냥당하여 묶인 범과 같도다. 이빨이 빠졌으니 범이 아닌게지. 개라 불러주랴. 무휼은 황제의 용안을 노려보며 몸을 부들부들 떤다. 대국의 천자란 자가 저열도 하다. 허나 무사의 혼을 꺾는다 하여 내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상처를 숨기기 위해 이를 드러내는 짐승처럼 으르렁댔다. 하지만 그 어떤 짐승이라 할지라도 천자 앞에선 모든 것이 무능하도다. 그러하냐. 그러면 더더욱 고통에 몸부림 쳐볼 것이냐. 해볼테면 해 보아라. 좋다. 그리하면 오늘부로 네놈을 색으로 물들여 주겠노라. 응당 무사로서 칼을 잡을수 없다는 것 만큼의 치욕이 어디 있던가. 이제 사내의 몸으로 태어나 당할수 있는 최대의 치욕을 맛보거라. 무휼은 절망하나 겉으로 드러내지 아니한다.
하지만 지금 무휼의 몸 상태는 색은 커녕 음식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이다. 고문관들은 고신을 그만두고 독방에서 꺼내어 일반 옥으로 처넣으니 그곳은 조선에서 끌려온 백성들이 있는 곳이었다. 제아무리 수령들이 피난하라 고한들 미처 듣지 못한 이들이 있으니, 이곳에 갖혀있는 자들이 그러하다. 다 죽어가는 몰골을 한 사내 하나가 옥으로 굴러들어오자 가리온이란 자가 나서 치료하는지라. 가리온의 곁엔 강채윤이란 어린 자가 수발을 들고 있었다. 북방을 떠돌며 의술을 배우던 가리온은 아비의 복수를 한답시고 북방민족들에게 대들다 당하여 나자빠져 있는 강채윤을 거두어 유랑하던 중 진군하던 이의 군사들에 붙잡혀 이곳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옥중에서 고신당한 이들을 치료하던 와중 무휼을 접하게 된 것이다. 양 손목이 새카맣게 죽어가는지라 급히 칼로 가르고 뼈를 맞춘 후 침을 놓는다. 미약하게나마 힘줄이 살아있어 낫는다면 지푸라기정도는 집을 수 있을 것이다. 손을 보아하니 검을 쥐는 자라. 이자가 뉘기에 이런 수모를 당한 것인가. 가리온 어른. 열이 오르고 있습니다. 채윤이 고하여 이마를 만지니 가히 열이 오르는지라. 급히 저고리를 벗겨내어 열을 내리게 조치하였다.
정신을 차린 무휼은 낯선 천장이 보여 경계하나 앞이 뿌연지라.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할 양반이 어찌 그런 살기를 뿜는단 말이옵니까. 목소리가 난 곳을 올려보니 가리온이 쳐다보고 있다. 조선 사람이오? 그렇습니다. 쇤네 도축을 하는 백정이옵니다. 북방을 떠돌다 시기를 잘못타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죠. 이곳에 조선사람은 그대 혼자뿐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꽤 많은 이들이 이곳에 갖혀 있습니다. 그나저나 손목은 어떠하시온지요. 그제야 무휼은 손목이 생각나는 것이다. 새카맣게 괴사하던 흔적이 미약하게 남아있어 울컥 눈물이 차오른다. 무사로서는 죽었다 하나 인간 무휼은 죽지 않았으니. 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괜찮소 하고 말을 하였다.
무엇을 하시던 분이셨나이까. 궁에서 전하를 호위를 하던 사람이었소. 전하의 호위무라니
무휼 나으리시오니까. 그대 어찌 나를 아오. 도성안은 물론이요 사대문 밖, 북방에서조차 무휼이라는 이름은 전설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습니다요. 허나 그리하면 무엇하오. 나는 대역죄인이고 전하께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소. 가리온은 무휼을 매우 딱하게 여겼다. 말을 나누고 있는 시점에서조차 손목을 감은 붕대에서 거무죽죽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이런 손을 가지고 무얼 한단 말이오. 지푸라기 한 가닥조차 잡을 수 없소. 심려치 마소서. 쇤내 비록 미천하고 지식이 얕으나 최선을 다하여 나으리의 손을 낫게 해드릴 것입니다.
가리온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손목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무휼은 그나마 가졌던 한가닥의 희망도 내려놓았다. 가리온은 온 정성을 다 하여 치료에 힘써 보며 힘을 내소서 위로를 건네나 통하지 아니하였다. 몸의 기가 정도껏 회복이 되자 무휼의 앞으로 작은 환 한알이 당도하니 이것이 무엇인가 물어도 아무도 답하지 아니한다. 그저 환을 들라 하는 황명이라는 것 뿐이다.
황제는 이국이 건국되기 전 초원을 거닐던 그들의 조상의 지혜를 빌렸으니. 무휼이 먹은 환약은 기가 약하여 밤을 힘들어 하는 여인들의 음기를 다스리는 것인 저, 하루에 한 알씩 닷새를 먹으면 그날 밤 제 서방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는 명약이다. 사내가 복용하면 계집처럼 온 몸을 비벼대며 사내를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흘째가 되자 슬슬 몸에 더운 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무휼은 이것이 육신의 아픔으로 인해 생기는 열이 아님을 알았다. 가리온이 암만 살펴본 들 이 열기의 원인은 환약밖에 없는 것이다. 먹지 마소서.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채윤은 환약을 쪼개 분석을 해야 하노라며 말하였다.
이 환은 대체 무엇이냐? 내게 무엇을 먹인 것이야! 알려드릴 수 없소이다. 그렇다면 내 먹지 않을 것이다. 황명이오. 그대는 이 환을 거부할 권한이 없소. 은쟁반을 눈 앞에 들이미는 환관의 얼굴이 자뭇 엄한지라. 먹지 아니하면 크게 경을 칠 것이라 여겨 어거지로 또 하나 먹었다. 이로서 나흘 째. 가리온은 심히 걱정을 한다. 마지막 하나는 천자께서 보시는 앞에서 자셔야 할 것이외다. 환관이 은쟁반을 거두며 고하였다. 그리고 조선의 내금위장 무휼은 오늘부로 잠시 황궁에 기거하게 될 것이오. 무휼은 영문을 모르나 나졸 두엇이 무휼을 잡아 옥 밖으로 꺼내는지라. 가리온과 채윤이 그들에게 연유를 물으나 눈짓하나 주지 아니한다.
넓디넓은 황궁의 안은 조선과는 달리 담이 높고 화려하여 눈 둘 곳이 많았다. 무휼은 여기서 조선의 임금을 떠올린다. 만세의 성군이신 전하. 옥체 평안하시옵니까. 하늘을 바라보며 감상할 새도 없이 드넓은 황궁 안에서도 가장 어둡고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갇혔다. 이곳은 무얼 하는 곳인가. 대역 죄인을 가두는 곳 치고는 지나치게 안락하지 않은가. 따스한 온기까지 느껴지는 곳이었으나, 건넌방으로 들어서자 그런 생각을 모조리 치우고 말았다. 기묘한 도구들이 즐비하여 무휼은 입을 다물 수 없는 것이다. 사내의 성기 모양을 본뜬 도구가 눈에 걸리자 드디어 무엇을 위해 이곳에 끌려온 것인지 깨달았다. 조선의 내금위장 영감께서는 어찌 이리 깨우침이 늦되오? 천자께서 하사하시는 환과 이곳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시오? 뒤늦게 따라 들어온 내관이 무휼을 조롱하였다. 무휼은 놀람과 경악을 느꼈으나 자뭇 침착한 체를 하였다. 이제 기억나는구려. 이국의 천자께서 이 몸을 색으로 물들인다 하지 아니하셨소이까. 과연 뜻대로 되는지 두고 보시구려. 과연 한 시진 후에도 그 소리가 나오는지 두고 보겠소. 옷을 벗기라는 환관의 명이 떨어지자 나졸들이 거친 손길로 저고리를 벗기기 시작 한다. 무휼은 조금 몸을 떨었다.
그믐의 밤, 주상께서 서책을 보시다 무심결에 무휼아 하고 부르시매 대답하는 이가 없더라. 주인 없는 이름은 허공에서 파하여 음절 하나하나가 흩어지는지라. 주상께서는 잠시 황망해하는 내관의 얼굴을 바라보다 옥수에 용안을 묻으신다. 미안하구려. 있지도 않은 이의 이름을 불러 내 그대를 곤란하게 하였는가. 송구하옵니다 전하. 늙은 내관은 근심어린 주상의 용안에 몸둘바를 모른다. 내 오랜 시절 무휼이 곁에 있어 그 소중함을 몰랐거늘, 이리 벌을 받는구나. 쓸쓸함이 가득한 목소리에 내관은 허리를 굽힌다. 늦은 시각 아직 퇴청하지 아니한 이신적 대감이 문건을 작성하여 가져왔다. 이에 끌려가 고생하는 무고한 조선의 백성들을 송환하기 위한 문서였다. 전하. 한사람도 빠짐없이 작성하였나이다. 수고가 많소. 주상께서는 문서를 받아들어 사람들의 이름을 찬찬히 훑어보시었다. 모든 이의 이름을 확인한 주상의 옥수가 짐짓 떨리는 듯하였다. 이신적이 퇴청하고 다시한번 백성들의 이름을 한자한자 훑어보았다. 뻔히 연유를 알면서도 적히지 아니한 이름 하나가 마음에 걸리었다. 그 안에 무휼의 이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