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님* 2015. 11. 3. 10:45

본디 한반도 땅엔 100년만에 한번씩 극음인이 태어나는데 나라에 망조가 들었는지 길태미 길선미 이 후 30년만에 또 극음인이 태어났다. 이름 자는 무휼. 그 무휼이 온갖 세상 풍파에 시달려 열 하나 있던 가족 다 잃고 15살이 됐을 무렵, 정말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인겸 앞에 잡혀왔다. 무휼을 잡아온 하급 무사 하나가 이르기를 이놈이 보기보다 힘이 너무 좋아서 장정 서넛이 나가 떨어졌다 하니 수시중 길태미는 눈을 빛내며 무휼을 흥미롭게 보았다. 이인겸 또한 극양으로서 무휼을 탐하는건 당연지사. 무휼은 어리고 싱싱한 극음인이다. 일단 얻었으니 그 몸을 취해야 하는데, 막상 몸을 열고 보니 이놈 처음이 아니다.


"어디서 함부로 구멍을 열고 다녔던게냐?"

"나으리 같은 이들이 이 몸을 가만 놔두질 않더이다! 대체 제가 무엇이기에! 무엇 때문에 이리 괴롭히는 것입니까!"

"너는 나기를 극음(極陰)으로 태어났다. 다른 극양(極陽)의 사내들에게 평생 몸을 내줘야 하는 암컷으로 태어난게야."


이인겸은 길태미가 보는 앞에서 기쁘게 무휼을 취했고 어리고 보드라운 살결을 원없이 주물렀다. 길태미는 허리짓을 하는 이인겸의 곁에서 괴로워하며 우는 무휼의 눈물을 닦아주며 접문도 해주는 등 조금이라도 몸이 편해지도록 사정을 봐 주었다. 어린 몸을 실컷 취한 이인겸이 나가고 소리없이 웅크리고 있는 무휼을 가만히 지켜보던 길태미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며칠 후 그는 무휼에게 좋은 옷과 목검 하나를 내려주었다. 무휼은 목검을 물끄러미 길태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 너에게 검을 가르칠 거다."

"어째서요?"

"너는 또래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좋아 검을 금방 배울거야."

"싫습니다."

"이인겸을 죽이고 싶지 않아?"


순간 무휼의 눈에는 경악이 아롱졌다. 길태미가 제게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몰랐을 터. 항간의 길태미는 이인겸의 애첩이자 극양인들의 무두질을 받아내는 이로 유명했다.


"평생 이렇게 살건 아니잖아. 그리고 너 하나 남은 동생도 팔려갔다며? 찾아야지."


무휼은 당장 다음날부터 길태미에게 검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무휼의 배움 속도가 엄청났으니, 길태미는 내심 탄복하여 이르기를 어찌 이런 무골기재가 극음인으로 태어났을까 싶다. 가엾고 딱하다. 그에게 검을 가르쳐 주는 이유는 아마도 동시대엔 있을수 없는 만남이라, 저가 어릴적부터 당했던 일들을 무휼이 다시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무휼은 실로 배움이 빨랐다. 가르친지 반년만에 모든 초식을 익혀 스스로 응용동작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길태미는 제가 가르치고도 뿌듯해 무휼의 얼굴만 봐도 배부를 지경이 되었다.


"네가 내 아들보다 낫구나. 그녀석은 암만 가르쳐도 나무토막이야."


무휼은 웃고있는 길태미의 얼굴을 보며 저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만난 이래로 처음 보는 웃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