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님* 2013. 8. 25. 23:51

스란두일에게서 떨어져 뒷걸음질을 치다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어. 스란두일의 차가운 눈에 온 몸의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음. 스란두일은 급하게 올라오며 소린의 증상을 들었어. 유산이라니. 그렇다면 그간 있던 알수 없던 증상들이.. 스란두일은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슬펐어. 누구나에게 다 그렇지만 특히 오메가에게 유산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라는걸 알고 있었음. 슬픔에 몸부림치며 우는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어. 소린은 분노했고 원인제공자인 스란두일을 건드려버렸음. 일어선 채 코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스란두일에게 무릎으로 기어가며 용서를 구했어. "자,잘못했..네. 다 내 잘못이니까 나..나한테 풀어! 킬리만은 안돼 제발 그 애는 아무 잘못 없으니까. 응?" 킬리. 그놈의 킬리. 처음 킬리에게 다가간건 소린을 꼬여내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어. 어린애에게 취미가 없었음. 소린의 성정상 킬리를 건드리면 소린 자신이 뛰쳐나올게 분명했기 때문에. 게다가 소린은 모르는 듯 했지만 이미 본딩도 맺었고 차차 마음을 줘 가고 있었건만. 소린에게 이 일은 단지 거래 그 이상은 아니었던걸 정확히 알게 되니 분노가 차오르는거. 하지만 소린이 다시 하혈을 하는 바람에 분노는 오래가지 못했어. 스란두일도 급하게 처치를 받고 소린이 누워있는 병실로 들어갔어. 어두운 조명 아래 손발에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나 처연했음. 스란두일은 옆에 앉아 두툼하게 붕대가 감긴 소린의 손을 쓰다듬었음. 생각지도 못했던 소린의 변화와 임신, 유산을 하루아침에 겪고 나니 소린의 마음이 이해가 갔어. 손을 들어 소린의 얼굴에 나 있는 눈물길을 덧그려보며 자신의 마음을 자각해버렸음. 단순히 골려주고 싶었던, 본딩을 맺어 욕망을 푸는 암컷이라 여겼는데 저 깊숙한 곳에 남아있던 마음이 이 자리에서 터져나왔어. 일찍 깨달을껄. 알파였어도 상관없었는데. 그러지 말껄. 소린은 스란두일의 갈곳없는 후회와 한숨을 듣지 못한 채 굳게 눈을 감고 있었음.

한바탕 폭풍이 지나갔어. 병원으로 난입한 필리와 킬리가 병실을 엉망으로 만들었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부수고 울고. 이 소란에도 소린은 깨어나지 않았고 세 사람은 병실에서 추방당했음. 병실 복도에 주저앉은 세 사람은 말이 없었어. 킬리는 히끅거리며 몸에 있는 수분을 다 빼버리려는듯이 울고 있었고 필리는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은 채 말이 없었고 스란두일은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음. 앞으로 어찌해야 할까. 일단 소린을 집으로 들여야겠지. 비록 유산을 했다고는 하나 제 아이를 가졌고 자신때문에 망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럼 이 녀석들은 어찌해야 할까. 스란두일은 머리를 붕붕 저었어. 소린만 데려갈거야. 더 이상 군식구를 들이고 싶지 않았음. 이녀석들에겐 적당한 돈을 주면 될테고. 영감님은 보호시설로 보내고. 그리고 그 생각을 전혀 필터를 거치지 않고 떨고있는 필리와 킬리에게 말을 해버렸어. 당연히 둘은 한차례 더 날뛰었고 이젠 아예 병원 밖으로 내쫒겼음. 필리와 킬리는 병원 정문 앞에 서서 너무나도 분한 나머지 얼굴이 새빨개졌어. 킬리는 울음을 그쳤고 이젠 필리가 눈물이 터졌어. "씨발.. 우리 때문에 삼촌이 씨발.. 왜 그딴 일을 당해야되는데!" 형제는 오늘따라 엄마가 너무 보고싶었어. 엄마라도 있었으면 정말 좋았으련만. 어디로 팔려갔는지도 모르는 엄마. 형제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엄마를 부르며 울었어.


소린은 닷새만에 겨우 깨어났어. 며칠간 계속됐던 고열로 얼굴이 홀쭉해졌음. 눈을 뜨고나서 여기가 어딘지 한참을 헤매는 듯 했어. 희뿌연 시선에 낯선 천장이 닿았고 곧 금빛의 머리카락이 눈에 닿았어. 눈앞의 사람이 누구인지 한참을 생각하는듯 하더니 잠깐 눈이 커졌다 다시 가늘어졌어.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떴을땐 새파란 눈이 일렁였고 눈물줄기가 흘렀어. "꿈 이었네.." 스란두일은 꿈처럼 중얼거리는 소린에게 다가가 귀를 기울였어. "무슨 꿈?" 하지만 소린은 이내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버리며 고개를 돌려버렸어. 스란두일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뒤로 물러났음.

소린은 스란두일의 집으로 옮겨져 나머지 치료를 받기로 했지만 스라인을 보호시설로 보내는건 끈질기게 반대를 해 소린을 제외한 세사람은 아직 반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었어. 소린은 스라인 일로 스란두일과 마찰을 일으킨 후 더더욱 스란두일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음. 몸이 어느정도 낫고난 후에 아버지를 직접 모실거라며 그 단칸방으로 돌아갔어. 하지만 그 몸으로 다시 막일을 할 수는 없었어. 스란두일이 더 이상 몸을 취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약해진 터라 단칸방에서 킬리와 아버지와 함께 그냥 쉬고 있었어.

소린은 조카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어. 킬리 대신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돈을 받고 몸을 팔았던거라 스스로가 매우 더럽다고 생각했어. 몸 하난 튼튼한 알파라고 자부해왔었는데 이젠 건강하지도 않고 알파는 더더욱 아닌데다 정말 완벽한 오메가도 아닌 몸임. 킬리는 자꾸만 움츠러드는 소린을 가만 껴안아줬어. 막 태어나 원숭이처럼 쪼글거리던 녀석이 어느새 이렇게 컸는지, 덩치로는 지지 않는 소린을 푹 안을수 있을만큼 컸어. 킬리는 아무말 없이 그저 꼬옥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줬어. 소린은 눈만 느리게 깜빡이다 마주 안았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선 허리를 꼭 끌어안았음. 두 사람은 그렇게 말 없이 한참을 끌어안았어.